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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장터 국밥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4월 17일

배귀선 
시인

끄무레하다. 하늘이 우중충하면 일기예보처럼 어깨가 결린 다. 그런 날 별다른 일이 없으면 사우나를 간다. 사우나가 뇌졸 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접하였기 때문이기도 하 지만, 따뜻한 탕에 들어가 이런저런 일들을 잠시라도 잊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도 하다.
 
온탕에서 나와 습식사우나의 매력에 푹 빠져 있을 때였다. 두 명의 남자가 배를 내밀며 들어오고 이어서 한 명이 더 들어왔다. 그들은 내 옆 좌우로 나란히 앉았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들도 어색한 공간을 메우려는 듯 잦은 헛기침을 해댔다. 모래시계는 소리 없이 시간을 소복하게 쌓고 있었다. 바로 옆 사람 이 슬며시 실눈으로 내 아랫도리를 훑어본다. 한 공간의 서먹함 을 상쇄하려는 듯 발열판 쪽에 앉은 사람이 궂은 날씨 때문에 결린다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스트레칭하자 다른 사람도 덩달 아 일어나 두 팔을 허공으로 치켜세운다. 한순간 사우나실은 스 트레칭 공간이 되어버렸다. 내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은 배가 나오 고 머리가 벗겨진 탓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하는 것 같았 다. 임신한 여자로 치면 만삭일 것 같은 그는 체구에 걸맞게 먹 성 좋은 말을 흘린다. 나도 그들도 동작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 다. 그는 입맛을 다시기까지 하며 순댓국밥집 이야기를 사우나 실에 펼쳐놓는다. 친절은 기본이고 내장탕에서 냄새도 안 나고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정보를 나를 건너 일행에게 알린다. 그들 은 나를 사이에 두고 술잔이 오가듯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따라 나온 반찬이야기며 내장 전골은 다 먹고 난 후 밥을 비벼 먹어야 맛있다는 둥 비빔밥으로도 소주 두어 병은 비울 수 있다 는 경험담을 술잔처럼 주거니 받거니 늘어놓는다. 국밥이 나오 기 전 덤으로 나오는 머리 고기로도 소주 한두 병은 먹을 수 있 겠다는 말들이 오가는 걸로 미루어 이 사람들도 나처럼 어지간 히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인 듯싶다.
 
내가 자주 가는 시장의 국밥집도 그런 곳이어서 이들에게 더 좋은 곳이 있다고 말을 해줄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그러니 까 내가 자주 가던 시장의 국밥집 주인도 반찬이 부족한 듯 보 이면 알아서 친절하게 내오곤 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자주 찾았 었는데, 한두 달 전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되어 있었다. 예전에 국 밥집을 운영한 사십 대 남짓한 부부의 손맛과 친절이 그리웠다. 주인이 바뀐 그날 이후로 한동안 국밥집을 찾지 않았다. 그러 던 차에 사우나실에서 새로운 정보를 들은 것이다. 나는 초면이 지만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남자에게 그곳 위치를 물었다. 신이 나 있는 그는 성모병원 앞이라며 가는 길까지 친절하게 알 려주었다.
 
입맛을 다시던 그가 남산만 한 배를 일으켜 세우더니 지금이 술시이니 그만 샤워를 하고 그 순댓국밥집에 가자는 말을 한다. 나 역시 뜨끈한 국밥과 막걸리가 떠올랐다. 갑자기 사우나실에 국밥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순댓국이나 돼지국밥은 시장 골목에서 먹는 게 제격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왠지 저 들이 말하는 국밥집을 한 번 가보고도 싶어졌다. 모래시계는 멈 추어 있었다. 은근히 동지를 만난 것 같은 친밀감에 경계가 느 슨해질 즈음 그들은 나 혼자만을 남겨두고 우허니 사우나실을 나간다.

내가 순댓국을 좋아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누구와 함께하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주머니가 가 벼운 나로서는 제격이기 때문이다. 한 병에 삼천 원 하는 막걸리 한 병을 주문하면 머리 고기와 국물은 덤으로 놓아주니 이곳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국밥 한 그릇이면 끼니와 술안주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으니 나에게는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뚝배기 속에 빡빡하게 들어있는 머리 고기와 막창, 암뽕, 순 대 등으로 두어 병의 막걸리를 마시고, 나머지 국물에 밥 한 그 릇 말아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국 밥 한 그릇은 어제나 오늘이나 따뜻함이 담겨 있는 음식이고 곁 들인 막걸리는 가시 돋친 세상을 무딘 눈으로 보게 하는 명약 같은 것이다.

나도 서둘러 샤워하고 목욕탕을 빠져나왔다. 골목에는 드문 드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 걸음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말한 곳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성모병원 앞에 ‘장터 국밥집’이라는 조 그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장터와는 무관한 곳인데 ‘장터’라 니. 지나치려다 허실 삼아 문틈으로 슬며시 들여다보았다. 소문 대로 대여섯 평 남짓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시장에서 장사하던 그 부부 였다. 반가움에 밀치고 들어가려다가 멈칫 돌아섰다.
 
점심시간을 넘겨 한가한 시간에 다시 찾았다. 반갑게 맞는 내 외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어 나온 국밥의 국물 한 숟가락을 입안에 머금었다. 시장 골목에서 먹었던 맛 그대로였 다. 국밥에 들깻가루를 넣듯 그간의 이야기를 고소하게 말아먹 으며 막걸리 두 병을 비웠다.
 
‘장터’ 하고 가만 읊조려보면 규격화된 것에서 벗어난 자유로 움 같은 것이 느껴지고 정겨움 또한 물밀어 오는 것 같다. 그러 나 젊은 부부의 국밥집은 장터에서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그 느낌이 나는 것은 사람 냄새 때문이지 싶다. 정이 밴 냄새. 부안 에는 장터 아닌 곳에 인심이 묻어나는 장터 하나가 더 있는 셈이 다. 생의 고단함을 후후 불며 뜨거운 국물을 떠먹는 ‘장터국밥’ 이 그곳이다. 생의 냄새가 첩첩으로 밴 시장 골목은 아니지만 푸 짐하게 내놓는 인심은 여지없는 장터 골목이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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