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예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이말은 당唐나라 승려 도선道宣의 저작‘교계신학비구행호율의敎誡新學比丘行護律儀’에 처음 보인다. 이 책의 사사법事師法에“스승을 따라 걸어갈 때는 웃거나 떠들면 안 되고,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일곱 자 남짓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성균관 학칙學則에는 '길에서 스승을 만나거든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길 왼쪽에 서 있어야 하고, 말을 타고 가거든 몸을 엎드려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최세진崔世珍이 쓴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불교의 중을 '스승(師)'이라고 기록하였다. 옛날에는 중을 존경해서 부를 때 '사승師僧' 혹은 '사師님'이라는 호칭을 썼던 것이다.
고려 때에는 선생이란 말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 대한 존칭이었다. 조선조 중엽의 문헌인 해동잡록海東雜錄에 보면 당시 선비들이 술 마시며 글 짓는 문주회文酒會에서 벼슬이 높거나 낮건 간에 서로 '선생'이라 호칭을 하였다. '비록 벼슬이 높은 귀인일지라도 과거에 급제하지 않으면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그저 대인이라 부르는 것이 고려의 법도'라고 기록되었다. 오늘날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정신적인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존경심을 높이는 동시에 교권 존중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 스승의 날은 매년 5월 15일이다. 유래는 1958년 충남 강경여자중고등학교의 청소년적십자에서 시작 되었다. 윤석란을 비롯한 단원들은 병환 중에 계신 선생님 위문과 퇴직하신 스승님의 위로활동을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63년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처음으로 5월 26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는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정하고 기념하게 되었다.
오늘의 교육을 말하면서 '선생은 있지만 스승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진정한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승의 어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무당을 나타내는 '무격巫覡'에서 유래한다는 설과 중을 나타내는 사승師僧에서 유래한다는 설이다. 무당을 나타내는 말로 무격에서 무巫는 '여자무당', 격覡은 '남자무당'을 말한다. 옛 문헌을 보면 무巫를 '스승 무'라고 하고 격覡을 '화랑이 격'이라 되어 있다. 결국 스승이란 '여자 무당'을 말하는 것이다. '여자 무당'은 고대사회의 모계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스승의 날은 선물을 빙자한 뇌물을 받는 날이라는 오명으로 남았다. 당시 스승의 날에는 각종 선물들이 교탁이나 책상에 수북히 쌓였다. 개중에는 고가의 금품은 물론 학부모들이 학교로 직접 찾아와 촌지를 주는 일도 허다했다.
최근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권익위원회에 의하면 선물은커녕 어린이가 색종이로 접은 카네이션을 주는 것도 불법이라고 한다. 직무와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허용하는 금액 이하의 선물에도 예외 규정에 걸린다는 것이 이유다. 다만 어린이의 종이꽃 선물이 금품으로 볼 수 있느냐?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빵 한조각조차 받지 않는 청렴 교사들도 많다. 요즘은 간단한 먹거리 조차 용납이 안 된다. 이런 악‧폐습을 없애고자 여러가지 방법들이 제시됐다. 스승의 날 없애기와 스승의 날 학생들 등교 안 하기 등이다. 거기다가 김영란법이 발효되면서 2017년부터는 각종 행사도 자취를 감췄다.
언젠가부터 스승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본디 '선생'이라는 호칭만으로도 존칭이기 때문에 뒤에 '님'을 또 붙이는 것은 존칭 중복이다. 한자 先生님은 '가르치는 사람'을 의미하는 선생에 존대격 파생접사 '님'을 붙인 말이다. 원래 고대 동아시아에서 선생은 소수에게나 쓸 수 있는 호칭이었다. 공자같이 학식이나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쓰는 호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타인을 가르치는 사람, 곧 스승을 가르키는 호칭으로 의미가 확장되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영어 Teacher는 선생님과 대응하는 단어가 아니라 교사에 대응하는 단어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선생님을 Teacher라고 부르는 데 비해, 영미권에서는 선생님을 보통 이름으로 부르므로 원어민 입장에선 이상한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으로 오면서 선생님은 주로 학생들이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일반인들은 교사敎師라고 부른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국가에서 정한 법령에 따라 자격증을 갖추고 학생들에게 국가에서 지정한 과목과 종목의 교육 이수의 과정에서 이끌어주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
교사의 주 업무는 교과 교육이지만 직업교육, 시민으로서의 소양, 사회에서의 역할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근대 학교에서 교사는 다른 전문직종과 마찬가지로 특수한 직종의 종사자로 정의된다. 교사는 주입식 교육이나 강의식 수업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창의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교사의 역할이자 교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교권 붕괴敎權崩壞, 교권 추락敎權墜落이라는 교권실추敎權失墜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교권실추가 중요시되는 것은 학생의 인권 무시, 입시 위주의 교육, 사교육 열풍, 가정 교육 약화, 학교 폭력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또한 각종 비리도 교권실추의 원인이다. 예를 들면 부교재 채택비 명목으로 금품·향응 등을 제공받는다거나, 교육계의 고질적 치부인 촌지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데도 있다.
학교교육 실종문제는 학교 개혁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사회전반적으로 종합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이 주장은 학생인권조례가 틀렸다고 보는 입장이다. 권위적인 교육청과 교장들의 학교 운영에 의해 교사들의 발언권이 묵살당하는 현실과 헌법에서 보장한 정치적 기본권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교사의 처지에서 오는 것이 본질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비리 교사에 대해 이처럼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것은 교육당국의 느슨한 제재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경우 교육계에 대한 불신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생님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많다.
추락하고 있는 교권 회복을 위해서는 교사의 교육권을 법적으로 명확히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권 보호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교사가 학습 지도와 생활 지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인성 및 권리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 학교는 모두가 존중받는 공간으로 교사가 존중받을 때, 진정한 교육이 가능하다. 교권 회복은 학생의 미래를 지키는 일임을 모두가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