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규
본지편집위원 칼럼
유현준 작가의 『인문건축여행』을 읽은 후 도시를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 주변은 이토록 비슷한 아파트로 가득한 것일까? 누군가 창문 밖을 내다보면, 그 창문 너머에도 똑같은 창문이 마주 보고 있고, 거실이, 주방이, 베란다가 모두 정해진 틀 안에 놓여 있다. 마치 일정한 규격에 따라 찍어낸 듯한 도시의 풍경은,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일상의 무대를 어디까지 제한하고 있는 걸까?
특히 책의 23장 「해비타트 67」을 통해 소개된 캐나다 몬트리올의 독특한 아파트 단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건축가 모셰 사프디가 설계한 이 실험적인 주거 단지는 콘크리트 박스를 규칙적으로 쌓았지만, 각 세대는 구조, 조망, 마당이 모두 다르다. 즉,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삶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개성이 살아 있는 공간이 개성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해비타트 67에서 우리 대한민국 주거 문화의 미래를 그려 본다.
필자는 ‘해비타트 67’이 1967년에 지어졌다는 사실에 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기 때문이다. 모세 샤프디 건축가는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이아 마을 같은 지중해 언덕의 주거 양식에서 영감을 얻어 이런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유현준 작가는 또한 바르셀로나의 ‘카사 밀라’를 통해 공간의 다양성이 인간의 정서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주는지를 더 많이 설명하고 있다.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직선보다 곡선이 지배하는 독특한 형태로, 마치 바위산처럼 생긴 외관과 유기적인 내부 구조는 사람들에게 낯설면서도 따뜻한 감정을 준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반드시 효율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일상의 공간이 예술이 될 수 있고, 공간이 감성을 자극할 수 있음을 ‘카사 밀라’는 증명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아파트 문화는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요즘은 한 단지 안 수천 세대가 같은 구조, 같은 색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심지어 가구 배치까지 비슷하다. 아이들방은 어디고, 안방은 어디며, 거실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이러한 주거 공간 속에서 자라는 우리 소중한 자녀들 그리고 삶을 꾸리는 가족들은 과연 얼마나 자신만의 삶을 구성할 수 있을까?
공간은 단지 기능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공간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 나아가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획일화된 공간은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다양한 사고와 감성을 제한할 수 있다. 실제로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골목이나 마당이 사라지면서 이웃과의 관계는 약해졌고, 공동체 의식도 희미해졌다. 창의성보다 규칙에 길들여지고, 서로 다른 삶보다 비슷한 기준을 추구하게 되는 배경엔, 이처럼 정형화된 공간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을까.
물론, 아파트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현대 도시의 요구에 부응한 필연적인 산물이다. 빠른 산업화와 인구 집중, 주거난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주거의 ‘양’을 논할 단계가 아니라, ‘질’의 전환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우리의 삶의 공간이 여전히 과거의 틀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단지의 반복은, 창의적인 설계와 다양한 주거 형태를 사실상 어렵게 만드는 현행 건축법의 제약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예컨대, 발코니는 건축법상 연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서비스 공간'으로 분류되어, 면적 규제를 피하려는 불법 확장의 우려로 인해 설계에 많은 제한이 따르고 있다. 이로 인해 입주자의 생활 방식과 개성을 반영한 설계가 구조적으로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주거 소프트웨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여,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서로 다른 형태와 기능을 지닌 주거 공간들이 우리의 새로운 주거문화의 기준이 되기를 기대한다.
『인문건축여행』에서 소개된 다양한 건축물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듯, 공간은 삶의 언어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집을 지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집을 지을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 서로 다른 삶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사람을 위한 건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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