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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참

주로 농사 짓는 노동 현장서 끼니와 끼니 사이 나누는 간식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6월 11일
새벽녘, 선잠에서 깼다. 두벌잠의 유혹으로 몽그작거리는데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수면睡眠 속으로 잠수하려던 욕구를 떨치고 메시지가 뜬 전화기 화면을 스캔한다. 전달 내용을 확인하고 답변 방법을 상상한다. 인터넷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가다가 수면水面 아래를 자맥질해 보리라 결정한다. ‘참’에 관한 내 애매모호한 인식과 사유를 정당화할 구실이 그곳에 있기를 바라면서.
전화기를 요동치게 한 건 수필 공부방 동인의 메시지였다. 동문 작가 모임 카페에 탑재한 내 합평 작품 「소금 도둑」 중에서 궁금한 부분을 질문했다. 질문 내용을 사각형으로 표시한 후 캡처해서 보냈다. ‘소금 도둑’은 형님네 아파트 계단참 구석에 쌓아 둔 소금 포대 1개가 사라진 사건을 소재로 썼다.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 시작하면서 그동안도 불안했던 민심이 더욱 설왕설래한 지점과 맞물렸다. 그러는 중 어떤 심리적 동요가 아무도 눈독 들이지 않던 천일염 포대까지 탐하게 했을 것이라는 심증으로 전개했다.
믿거라 하고 쌓아 둔 소금 포대가 비게 되자 형님은 처음 수량까지 긴가민가했다. 결국 직접 구매해 준 딸내미 내외에게 전화하여 확인했다. 그 과정에 사위는 방을 붙이자는 기발한 제안을 했다. “소금 가져가신 분, 기왕에 가져갔으니 맛있게 드시고 모자라면 쿠○에서 배달해서 드시라”하고. 형님네는 사위 의견대로 방을 붙인 후에 사건을 종료하려고 했다. 그런데 도둑이 무슨 생각을 했든지 가져갔던 소금 포대를 다음 날 되돌려놓았다.
이 글을 합평 방에 올리고 잠들었는데 부지런한 문우는 새벽에 벌써 읽고 의견을 보냈다. 다시 잠들까, 말까로 오락가락하다가 메시지를 보는 순간 잠이 싹 달아났다. 만약 이 수필에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불안한 사회 현상에서 나타난 인간 심리를 조명했다. 또는 사회가 뒤숭숭할 때에 스스로 심지心志를 바르게 하려는 것이 주제라고 비몽사몽 둘러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문우가 캡처해서 보낸 문장은 “아파트 계단 참 두 쪽의 벽에…”라는 부분이었고, 그게 무슨 뜻이냐는 구체적인 지적이었다. 다시 살펴보니 두 쪽의 벽은 방榜을 붙인 두 개의 벽을 나타냈는데 전후 문장을 연결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계단 참 두 군데의 벽”이라고 퇴고하면 더 안정적인 문장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되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건 그다음이었다. 아무 의구심 없이 사용한 계단 참을 답변하려니 쉽지 않았다.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가 주장한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차치하고라도 늘 단어의 사용이 적확한가, 명징한 표현인가. 사전을 섭렵하고 맞춤법 검사를 돌리기도 하며 고심하는 척하지만, 어느 순간 습관처럼 지나치는 지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계단참이 그랬다. 계단은 그렇다고 치고 ‘참’에 관한 나의 관점을 답하기에는 불분명하고 석연치 않았다. 무심결에 사용한 단어였지만 답변하려니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렸다. 국어사전에 따른 의미의 참은 ‘사실이나 이치에 어긋남이 없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먹는 음식’을 뜻한다. 또는 그 쉬는 시·공간까지도 포함한다.
참은 주로 농사를 짓는 들판이나 노동 현장에서 끼니와 끼니 사이에 나누는 간식이며, 새참을 먹는다거나 참을 든다고 한다. 그 시간 잠깐 숨을 돌리는 여유까지 해당한다. 노동자를 부리는 갑의 처지에서는 그 잠시의 참마저 아까워 앗아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기억의 ‘참’은 갑의 처지를 넘어 여러 가지 복합적이고 정겨운 레토릭을 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계단참도 계단과 계단 사이의 공간 어디쯤이라고 어림짐작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독자에게 전달하기에는 너무 장황하고 친절하지 않았다.
좀 더 간명하거나 확실한 노웨어know where가 필요했다. 싱싱한 해산물 같은 정보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 바다에서 해녀가 되어보리라. 무자맥질로 심해까지 오가며 해루질할 자세가 되었다. 그런데 깊은 바다로 나가려 파도를 타자마자 수세미 속같이 얼크러졌던 머릿속이 잘 감긴 실패처럼 가지런해졌다. 일하다가 먹는 새참이나 그 시·공간 등을 중언부언하는 내 사유까지 아우르면서도 선명하게 표현할 해답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느 건축가의 블로그를 갈고리로 살짝 건들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우선 계단(Staircase)은 층과 층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건축 현장에서는 아직도 일본말 가이단이라고도 한다. 계단참(Landing, Platform)은 계단의 시작과 끝 사이에 있는 평평한 바닥이다. 계단의 방향이 바뀌는 지점이기도 하고, 중간에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28조에 의하여 높이가 3m를 넘는 계단은 높이 3m마다 너비 1.2m 이상의 계단참을 의무적으로 설계하고 설치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3m 이상 계단이면 계단참을 설치해야 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계단참이 없는 건물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 속 건물 중에 남영동 대공분실의 계단 이야기였다. 그곳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을 납치해다가 감금하고 고문했던 장소로 익히 알려졌다. 그 건물 층계에는 계단참이 없었다. 나선형 계단으로 설계하여 계단참을 없앴다고 한다. 납치되어 온 인사가 자신이 고초당하고 있는 층수를 알 수 없게 한 장치였다. 직접 확인한 바는 아니었지만, 권력 유지를 위한 은폐나 엄폐에 얼마나 세심하게 잔머리를 썼는가 짐작해 보게 했다.
서핑을 통해 건져 올린 계단참은 내가 체화한 참을 내포하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소금 도둑’ 작품에서는 계단과 참이 각각의 단어인 줄 알고 띄어 썼다. 그런데 건축 용어에서는 계단참을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하였다. 일물일어가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탐사한 바다에는 계단참 말고도 우리가 거의 날마다 디디고 다니는 층계의 각 명칭을 다양하게 소개하였다. 발을 디디는 수평 표면을 디딤판이라고 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수직 부위가 발끝에 챈다고 해서 계단 수직의 표면을 계단 챌판(Riser)이라고 한다. 계단코(Nosing)는 디딤판의 끝부분을 말한다. 그것은 또 디딤판 일부이며 챌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사람들이 무심히 스치는 하나하나에 모두 이름이 있고 외국어가 그대로 사용되거나 우리말로 된 명칭은 재미있기까지 했다.
이른 아침에 감지한 파동 덕분에 잠시 물질하는 해녀가 되었다. 이 시각 실제 바다에 입수해야 했다면 못 할 일일 수도 있다. 아무리 잠수복이 따뜻하다고 해도 아침 바다의 해수 온도는 만만치 않을 것이고 허리에 매달고 들어가야 할 납덩어리 또한 여간 아닐 것이다. 수경을 쓰고 해루질 갈고리를 챙겨 자맥질한다고 해도 아마 숨비소리 한 번 제대로 뽑아 올리지 못하고 바다 밖으로 내쳐졌을 거다. 게다가 나는 물을 두려워하고 수영도 잘 못하는 빈 맥주병이지 않은가. 하지만 인터넷의 바다에서는 종종 해녀가 된다. 잠수복이나 수경 대신 약간의 장비와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서 가능하다. 덕분에 제대로 된 ‘참’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고 위안 삼는다. 물 밖으로 나온 해녀가 토해내는 농밀한 숨비소리를 흉내 내어 긴 숨을 토한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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