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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내가 나를 보듬을 때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6월 18일
전화벨이 울린다. 아들이다. 임용고시를 치른 뒤로는 전화가 뜸했었다. 고시 준비하는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도 만나야 할 것이기에 소식이 없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전 화하는 걸 보면 무슨 중요한 일이 있지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 다. 초등임용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 로 알려왔다.
나는 칭찬을 하면서 바람직한 교사상을 전화기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고군산열도의 신시도에 가면 신시 초등학교가 있는 데 그곳에는 3명의 학생이 있다는 것과 낙도에서 고생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를테면 아무리 세상이 험해도 한 사람의 장래가 걸려있는 일이니만큼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더욱이 나에게는 초등학교 때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내 당부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시대가 그랬거니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려움이 앞서곤 한다. 이미 50여 년 이 지난 일이라서 잊힐 수도 있으련만 길을 가다가도 어린이들 을 보면 불현듯 그 선생이 떠오른다.
60년대 초반의 경제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경제라고까 지 운운할 수 없는 가난한 시절, 당시 우리 반에는 노란 주전자 가 하나 있었다. 한 반에 학생 수가 육칠십 명이었고 그것도 교 실이 부족해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받을 때였다. 수 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면 으레 각자 맡은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에 있는 우물로 가서 주전자에 물을 담 아오는 일을 맡았다. 지금 같으면 위험해서 우물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할 테지만 그때는 안전에 대해 무관심했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그 때문에 우물에 빠져 죽거나 구사일생 살아나기도 했 다. 그래도 누구 하나 지금처럼 학교에 항의하거나 언론에 회자되지 않았다.
이 같은 정서 속에서 나는 주전자를 그만 우물에 빠트리고 말았다. 떨어지는 주전자를 잡으려 허공을 움켜쥐다가 하마터 면 나도 우물에 빠질 뻔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깊은 곳으로 가 라앉는 두려움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냉이죽과 강 냉이 빵을 배급받던 시절 노란 주전자는 귀한 물건이었다. 부잣 집에나 있을까 말까 한 주전자를 빠트렸으니 후환이 두려웠다. 평소 담임 선생님의 손찌검은 무섭다 못해 오금이 저릴 정도였 기 때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부터 담임은 주전자를 가져오라며 매일같이 뺨을 때렸 고 귀를 이리저리 흔들며 잡아당겼다. 폭력을 부모님께 알릴 수 조차 없었다. 웃자란 어린 마음은 노란 주전자를 선뜻 사다 줄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시절임 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뚱뚱했던 그 담임의 손은 두껍고 힘이 셌 다. 한번 맞으면 저만큼 나가떨어졌다. 하필이면 담임의 집이 학 교 근처에 있어서 등하굣길에 마주칠 때도 있었다. 그 담임의 집 탱자나무 울타리만 봐도 주눅이 들었던지라 나는 등하굣길을 멀리 돌아가거나 그 집 백 미터 전쯤부터 죽어라 달려서 지나치 곤 했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이어진 폭력에 나는 속절없이 당해야 했다.
그때부터 학교에 가는 일이 두려웠고 학교 대신 거리를 배회 하거나 뒷산(성황산)에 올라 하루 종일 있다가 집에 가곤 했다. 이렇게 내 초등학교 시절 중간치기는 4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담임 같은 선생만 있는 건 아니었다. 5학년이 되었을 때 고충석이라는 교생 선생님이 담임을 맡아 나와 인연이 되었 다. 그 시절 그 선생님은 동네 형들을 따라다니며 담배에 손을 대고 곡식을 훔쳐 팔아 군것질하던 내 유년을 바르게 잡아주었 다. 폭력으로부터 주눅이 들어 공부와는 담쌓은 나를 책상 앞에 앉게 했다. 그 선생님은 교생실습이 지나고 본 교사로 다시 오 시어 6학년 때도 인연은 이어졌다.
수필은 흔히 자아 발견의 장르이면서 성찰의 문학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나를 찾고 성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교사의 폭력을 뺨으로 받아낸 유년 의 기억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한때는 교사에 대한 트라우 마가 있어서 가까이하기 어려운 족속으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내 아들의 바른 교사상을 언 급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두려운 기 억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내 안에 가득했던 원망과 복수에 대한 무화의 성찰 같은 것이다.
바람직한 교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아들이 알았 다며 그만 끊을 것을 재촉한다. 이 시대 성적과 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지난한 일이지만 초등교사는 미성숙 한 인간을 돕는 시금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이미 고인이 되었을 수도 있는 담임 선생님의 폭력 에 대한 두려움도 내려놓는다. 내가 나를 보듬는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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