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관세협상에서의 시그널과 노이즈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8월 06일
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요즘 국제뉴스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두 가지 이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관세협상과 트럼프 대통령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성범죄자 엡스틴 파일의 공개 관련 딜레머일 것이다. 두 가지 이슈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나 관세협상의 의사결정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집중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엡스틴 파일 때문에 신경이 쓰여 집중력이 분산되면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관세협 상에서는 정책의 비중이 더 크고, 엡스틴 파일 문제는 정치의 비중이 더 크다. 정책과 정치가 충돌할 때 정치가 이기는 것이 현실이다. 2003년 1월 필자가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갔을 때의 일이다. CNN의 한 기자가 방금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이야기하다 오는 길이라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말로는 재임기간 중에 북미 수 교를 할 수 있♘는데 시간이 정말 조금 부족해서 마무리 짓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고 전했다. 시간이 부 족했던 것은 중동문제에 신경써야 했기 때문이라 했다. 필자는 쓴 웃음을 짓는다. 진짜 이유는 백악관 인 턴이♘던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에 붙들려 정신이 없♘기 때문이♘을 것이다. 그 일이 없♘으면 북미수교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북한이 정권보장을 받았으니 핵개발이 필요없다고 생각하게 되♘을 수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 뒤에도 북미수교의 기회가 있♘지만 북한이 수교 뒤에올 개방의 여파가 두려 워 차일피일 미뤘다는 주장이다. 남녀간 애정문제로 역사의 경로가 바뀌는 일이 희귀한 일은 아니다. 블레즈 파스칼은 “레오파트라의 코가 더 짧았으면 지구 전체의 모습이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이었던 율리 우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행보 때문에 역사의 경로가 달라졌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 이다. 관세와 본질적 관련이 없는 엡스틴파일 문제가 한국과 미국간의 관세협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예측하기 힘들다.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분석할수 있는 내용보다 우연적 요소가 더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정보이론에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시그널, 그리고 잡음을 노이즈라 한다. 섀넌-하틀리 정리에 의하면 일정한 대역폭의 통신채널을 통한 정보전달 역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그널과 노이즈의 상대적 크기다. 트럼프가 일으킨 평지풍파로 시작된 관세협상은 그동안 하도 왔다갔다 해서 시그널에 비해 노이즈가 워낙 크다. 그동안 통상관련 협상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식과 능력도 이번 협상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무엇보다도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불가능하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협상 직전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 성적이 협상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런데 트럼프는 골프성적도 조작한다 하니 그 영향마저 분석하기 힘 들다. 설상가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는 항목들이 통상적이지 않다. 관세율 협상의 대상에 대외투자액 이 들어오는 건 그래도 같은 경제 항목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국방비 증액, 마약단속까지 단일 협상 테이 블에 올라오면 항목 간 상대 가격을 매길 수가 없어, 얼마를 서로 주고 받는지, 누구에게 이익이고 누구에 게 손해인지 도대체 계산을 할 수가 없다. 전무후무한 통상협상이다. 시그널보다 노이즈가 훨씬 커서 협상이 타결된 뒤에도 잘 된 협상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을 협상대표로 내보내야 하는가. 트럼프처럼 예측불가능하고 비합리적인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가.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노이즈가 커서 대세에 큰 영향은 없을 것 이다. 너무 합리적인 사람은 오히려 상대방의 허장성세에 말려들어가기 쉬울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는 경 제학자로서, 게임이론 논문을 몇 편 썼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협상이론을 연구했던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필자가 다룬 모델들은 모두 플레이어들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합리성의 가정이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합리적 협상대표를 내보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게 모순은 아니다. 인간은 원래 합리적이지 않다. 그런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더욱 합리적이지 않다. 국제질서도 합리적 이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 같은 통치자들이 있는 게 현실세계다. 그래도 사람들은 합리성을 추구해왔다. 사회도 국제질서도 합리성을 지향해왔다. 노이즈는 있지만 시그널이 더 크다고 생각해왔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은 이런 순진한 생각을 잠시 접어 두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트럼프 같은 미국 대통령이 나타난 것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르윈스키 스캔들이 그래왔듯이 엡스틴 파일도 역사의 행로를 바꾼다. 합리적이라 고 자부하는 경제학자의 외침 보다 이런 노이즈들이 더 큰 소리로 들린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8월 06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