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의 시 감상 <손>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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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열무 씨를 뿌렸다 며칠 지나자 싹이 나왔다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에 어린 열무, 흙물에 쓰러지고 더러는 뿌리 뽑혀 명을 달리 했다 하지만 잔뿌리 하나라도 흙손 놓지 않은 열무는 푸름 속에 한 잎을 더했다
생전 아버지‘6·25 때 너 큰 형 큰 누나 내 손 놓쳤으면 지금 이 세상에 어림도 없다’ 철부지 자식들 툭하면 당신 손 놓으려 했어도 그때마다 더 꽉 잡으며‘옥수수수염 많다고 다 익은 줄 아냐 속이 영글어야 한다’하셨다
어느 겨울날 전화벨이 요란히 울렸다 서둘러 달려가 손잡으니 굳은살 박인 큰 손 기 없이 미동도 없었다 아버지 제발 더 꽉 잡아주세요
막내딸 내 손 떠난 지 수년 됐는데 잘 살고 있는지 하긴 너도 네 자식 손 잡느라 바쁠 테니
□ 정성수의 詩 감상 □
시「손」은 생명의 연속성과 부모 세대의 희생, 그리고 자식 세대의 삶을 따뜻하면서도 절절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텃밭에 열무 씨를 뿌리는 일상적인 장면으로 시작한 시는, 자연의 순환과 인간 삶의 은유를 겹쳐놓으며, 한 생명이 뿌리내리고 자라나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폭우 속에서도 흙손을 놓지 않고 뿌리를 지키는 열무의 모습은, 역경 속에서도 가족과 생명을 지키려 했던 부모의 사랑과 인내를 상징한다. 시의 중심에는 아버지라는 인물이 있다. ‘6·25 때 너 큰 형 큰 누나 / 내 손 놓쳤으면 지금 이 세상에 어림도 없다’는 회상의 장면은, 전쟁이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을 지켜내려던 아버지의 필사적인 손길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버지는 단순한 가장이 아니라, 생명줄처럼 자식들의 삶을 쥐고 있는 존재였다. 자식들이 철없던 시절 아버지의 손을 놓으려 할 때마다, 더 강하게 붙들었고, 그것이 곧 사랑의 방식이었다. 이러한 사랑은 시간이 흘러 결국 자식이 부모의 손을 붙잡는 반대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 시인은 ‘제발 더 꽉 잡아주세요’라고 절박하게 호소한다. 생전 자식의 손을 붙들던 아버지의 손은 이제 미동도 없이 가만히 놓여 있고, 굳은살 박인 손은 시간과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장면은 부성애의 종착지이자,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정서적으로 강렬하게 포착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시인이 이제 부모의 역할을 수행하며, 내 손 떠난 지 수년 된 막내딸을 떠올린다. 이는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자연스러운 일이자,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생명의 연속성을 의미한다. ‘너도 네 자식 손 잡느라 바쁠 테니’라는 말은, 부모로서의 이해와 체념이 담긴 따뜻한 고백이며, 세대를 잇는 사랑의 고리로 마무리된다. 따라서 시「손」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손’의 상징성을 통해, 삶의 위기 속에서 지켜진 가족애, 떠남과 붙듦의 교차,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의 깊이를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자연과 인간 삶의 아름다운 병행 서사 속에서, 손은 곧 사랑이고, 지킴이며, 세대를 잇는 다리임을 깨닫게 한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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