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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말(言)들이 말없이 흩어진다 하얗게 부서져 가루처럼 떠돌다 조심스레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수많은 말(言)들이 춥지도 뜨겁지도 않게 조용히 나를 덮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다고 그래서 잊어도 되는 건 아니다 이맘때면 다시 오마던 그 약속이 차가운 바람 너머에서 속삭이면 나는 문득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인다 눈이 시리도록 아픈 기척이 지나간다 고개를 든 산수유 한 송이 노랗게 피어난 순간 작은 미소처럼 가늘게 흔들리며 봄을 말(言)하고 있다
□ 정성수의 詩 감상 □
시「해후」는 말(言)로 다 하지 못한 감정과 기억, 그리고 그것이 자연의 순환 속에서 다시금 되살아나는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시는 ‘말(言)’이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발화되지 못한 언어들 -즉, 감춰진 진심, 하지 못한 고백, 흘러간 약속- 이 시간 속에서 되살아나 시인에게 다가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앞부분의 ‘못다 한 말들이 말없이 흩어진다 / 하얗게 부서져 / 가루처럼 떠돌다’는 표현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 말로 전해지지 못했던 감정들이 기억의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그 감정들은 ‘내 어깨 위로 조심스레 내려앉고’, 결국 ‘춥지도 뜨겁지도 않게 조용히 나를 덮는다.’ 이로써 시인은 말이라는 존재가 물리적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그 여운과 의미는 여전히 우리 안에 머물고 있음을 전달한다. 중반부 ‘보이지 않는다고 / 들리지 않는다고 / 그래서 / 잊어도 되는 건 아니다’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잊은 듯 살아도, 언젠가 되돌아와 우리의 마음을 건드린다. 특히 ‘이맘때면 다시 오마던 그 약속’은 시간의 주기성과 계절의 반복 속에서 되살아나는 감정을 상징하며, 특정 시기에 맞물려 떠오르는 그리움, 기다림, 혹은 상실을 내포한다. 후반부 ‘눈이 시리도록 아픈 기척’이 지나가고, ‘고개를 든 산수유 한 송이’가 ‘봄을 말(言)하고 있다’는 장면은 절정의 전환점이다. 봄이라는 계절은 새로운 시작이자 회복의 상징이며, 산수유는 추운 겨울 끝에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 희망과 기다림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한 송이 꽃이 ‘작은 미소처럼 가늘게 흔들리며’ 라고말(言)하는 ‘봄’은 곧 다시 찾아온 ‘해후’의 순간이자, 오랜 침묵 끝에 찾아온 ‘말(言)의 귀환’이다. 결국, 시「해후」는 발화되지 못한 말들이 시간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계절과 감각, 기억을 매개로 다시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말(言)은 사라지지 않고, 때를 따라 다시 돌아와 우리에게 말(言)을 걸며, 우리는 그 속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감정과 조용한 재회를 맞이한다. 이 시는 잊힌 듯한 감정의 복원과 삶의 반복 속 진실한 순간들을 찬찬히 되새기게 만드는 서정적 사유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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