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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철 ESG연재 12회- 시애틀이 들려주는 ‘건강한 삶’의 노래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05일
김태철
한국탄소산업진흥협회 부회장/공학박사
본지 ESG 전문기자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에는 ‘에메럴드 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가 있다. 비가 잦아 도시의 숲과 공원이 늘 푸른빛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워싱턴주 시애틀이다. 시애틀은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스타벅스와 코스트코, 보잉의 첨단공장이나 기업들의 본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시애틀의 진정한 매력은 태평양을 향해 열린 퓨젯사운드(항구와 만을 포함한)와 워싱턴호수의 푸른 물결, 울창한 침엽수림과 도시의 건축물이 서로 조화롭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 자연과 기술, 산업과 삶이 한 도시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시애틀을 단순한 기업도시가 아닌 이는 ‘건강도시’로 만든 중요한 토대가 된다.
시애틀은 미국의 여러 도시 가운데 건강도시로 유명세가 있다. 하지만 건강한 도시의 탄생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노력 없이 떨어진 행운이 결코 아니다. 한 세기에 걸친 도시의 철학과 시민의 선택, 그리고 미래를 내다본 행정이 겹겹이 쌓인 결과물이다. 시애틀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건강한 도시는 병원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들이 걷는 길과 먹는 음식, 이웃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도시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시애틀의 에머럴드, 푸른 기적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원과 공원을 연결하고, 도시 전체를 녹색의 고리처럼 엮는 ‘그린 링(Green Ring)’ 구상이 그것이다. 당시에는 다소 이상적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난 오늘, 이 구상은 시애틀의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도시의 공원은 고립된 섬처럼 흩어져 있지 않다. 사람들은 녹지와 산책로, 자전거도로를 따라 공원에서 공원으로 이동한다. 나무 그늘 아래를 걷고, 호숫가에서 잠시 멈추며, 자전거를 타고 일터와 학교로 향한다. 공원은 특별한 날에만 찾는 관광지가 아니라 매일의 삶을 품는 생활공간이 된다. 시민 1인당 공원 면적과 자전거 인프라가 미국 최상위권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오래된 시애틀의 철학이 있었다.
오늘날 시애틀은 여기에 ‘블루 링(Blue Ring)’이라는 새로운 상상력을 더하고 있다. 녹색 공간을 잇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물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도시계획에 담아내는 시도다. 퓨젯사운드와 호수, 하천과 빗물을 도시의 부담이 아니라 자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시애틀의 거리는 더 이상 자동차만을 위한 통로가 아니다. 사람 중심의 머물고, 쉬고, 대화하는, 사람들이 편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의 거실(Outdoor living room)’로 다시 설계되고 있다. 웨스트레이크 애비뉴(Westlake Avenue)와 같은 거리는 이러한 변화의 상징이다. 자동차의 이동을 돕는 간선도로이면서도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을 함께 갖춘다. 가로수와 열린 광장, 빗물을 흡수하는 정원은 도시의 표정을 부드럽게 바꾼다. 빗물은 하수관으로 서둘러 흘려보내야 할 골칫거리가 아니라, 도심의 생명을 키우는 물이 된다. 시민의 발걸음은 이 길 위에서 운동이 되고, 만남이 되며, 도시의 활력이 된다.
건강도시는 넓은 공원과 편리한 자전거도로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인 사업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배려’가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시애틀의 음식점 위생 등급제(Food Safety Rating System)는 그 배려가 어떻게 사회적 신뢰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시애틀 보건당국은 과거의 불평등하고 일관되지 못한 위생점검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학계와 협력했다. 검사관들의 입장에서 평가하는 것을 더 객관화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노력하는 피어 리뷰(Peer review) 과정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위생점검을 단순한 처벌의 수단이 아니라 신뢰를 쌓는 행정으로 바꾼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작은 이민자들의 식당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어 장벽 때문에 위생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민자들을 위해 복잡한 안내 대신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스마일리 페이스(Smiley face)와 같은 직관적인 기호를 활용했다. 어린이도, 외국인도, 누구나 음식점의 위생 수준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책의 색상 하나까지도 특정 인종이나 집단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조정했다. 건강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안전을 선택할 권리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원칙이 정책의 세부사항에 살아 있었다. 이러한 행정은 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배려가 시민들과 신뢰를 만든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정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기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규칙. 건강도시는 바로 이런 일상의 토대 위에서 자란다.
시애틀의 건강도시 마지막 힘은 시민참여에서 나온다. 1991년, 30명의 자원봉사자로 출발한 ‘지속가능한 시애틀(Sustainable Seattle)’ 네트워크는 도시의 건강을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를 시민 스스로 만들었다. 이들은 도시의 성장을 GDP와 같은 경제지표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연어가 다시 하천으로 돌아오는지, 아이들의 천식 입원율은 낮아지고 있는지, 시민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를 물었다. 이 질문들은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었다. 경제 규모가 커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자연의 생태계가 살아 있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며, 이웃이 서로를 신뢰하고,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의미와 행복을 느낄 때 비로소 도시는 지속성장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시민들이 직접 지표를 정하고 평가하는 과정은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다. 누군가 정해준 행복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건강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애틀의 사례는 우리에게 묻는다. 건강도시란 병원이 많고, 공기가 깨끗한 도시만을 뜻하는가? 물론 의료와 환경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건강도시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걷고 움직일 수 있는 도시이며, 누구나 안전한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도시다. 또한 시민이 도시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시정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도시다. 시애틀은 자연을 보존하는 일과 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이 서로 상충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울창한 숲과 바다는 도시의 자산이 되었고, 그 자산을 바탕으로 항공과 정보기술, 유통과 문화산업이 지속성장 가능했다. 초기 항공기 제작에 가문비나무와 삼나무가 활용될 만큼 풍부했던 지역의 산림은 산업의 토대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자연과 기술이 공존하는 지속가능성의 토대가 되었다. 산업의 생태계와 자연의 생태계가 함께 살아야 도시의 미래도 지속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필자의‘지속가능한 시애틀(Sustainable Seattle)’에 대한 근거는 첫째, 시애틀에는 컴퓨터와 공학으로 유명세가 있는 와싱턴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혁신마인드의 기업가정신을 가진 시민들의 열린마인드이다. 셋째는 풍부한 자원과 태평양을 향한 지리적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의 건강도시를 돌아볼 때다. 전북특별자치도의 도시들도 오랜 관행과 안전지대의 낡은 외투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상상력을 입어야 한다. 행정이 모든 답을 정해 시민에게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민은 정책의 수혜자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방안을 제안하는 ‘뉴 밸류 크리에이터(New Value Creator)’가 되어야 한다. 공원 하나를 더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공원이 사람들의 일상속에 연결되어 있는지, 아이와 노인, 장애인과 이주민 모두가 편안히 이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된다는 말이다. 도로를 넓히는 일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이 사람을 갈라놓는 장벽이 되는지, 아니면 걷고 만나고 머무는 공간이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건강한 도시의 기준은 시설의 숫자가 아니라 시민의 체감에 있는 것이다.
시애틀의 랜드마크이자 상징물인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은 당시 세계박람회를 준비하며 우주시대의 비전을 담아 1961년도 완공하였다. 이 랜드마크 타워는 단순한 물리적인 구조물을 뛰어 넘어 시애틀의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성장과 발전시키겠다는 그들의 마음을 담아낸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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