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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18> 소월과 담배-문화적 자존심

건강도 재산도
희망마저 잃어,
그가 오로지
향유할 수 있는 건
한 개비의 담배밖에
없었으리라.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17일
ⓒ e-전라매일
국민 시인 소월(素月)은 담배를 즐겨 피웠다. 그는 왜 담배를 즐겨 피우게 되었으며, 그의 시가 왜 우울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소월의 부친은 소월이 세 살 되던 해 처가를 가던 중 철도공사를 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어린 시절을 암울하게 보내면서 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으나 가세가 기울어 진학을 못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산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1923년 도쿄상대에 입학, 그러나 같은 해 9월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했다.
오산 학교 시절 스승 김억(金億) 시인을 만나 「먼 후일」.「엄마야 누나야」 등 문단의 주목을 크게 받았으나,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다 실패로 돌아가자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사 지국을 경영했으나 또 실패, 이후 실의의 나날을 술과 담배로 생활을 하였다. 그의 유일한 시집『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으나, 33세 되던 1934년 결국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소월은 김억과 더불어 담배를 즐겨 피웠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담배는 명상의 도구이자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었다. 이 무렵 그가 쓴 시가 있다.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 시절에 /났다가 새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어물어물 눈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 다만 타붓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어./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김소월, 「담배」 전문
소월은 이 작품에서 담배에 관한 오랜 전설을 소개한다. “내력을 잊어버린 옛 시절에/ 낫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는 구절은, 당시 세간에 널리 퍼져 있던 담배 관련 속설을 시화한 것이다. 소월 앞에는 좌절과 권태와 슬픔으로 가득 찬 세계만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시간을 죽이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화자의 이러한 모습은 무용한 것들에 탐닉함으로써 예술가적 자의식을 만들어가는 댄디즘의 일면이라고 볼 수 있다’(소래섭)
소월은 일본에서 돌아 온 뒤 한동안 서울에 머무르며 스승인 김억, 친구인 나도향 등과 어울려 술과 담배를 즐겼다. 그의 스승 김억의 회고에 의하면 술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소월을 보고 친구들이 “자네는 왜 비싼 카이다만 피우는가?” 하고 물으면 “담배는 왜 피우오? 담배는 일종의 사치요. 사치할 바에야 사치스러운 사치를 하는 게 옳치 않소? 나는 값비싼 사치는 해도 값싼 사치는 하기 싫소” 천하의 시인 김소월 다운 답변이었다.
소월에게 많은 문학적 영감과 소재를 제공한 그의 숙모 계희영의 증언에 따르면, “부잣집 아들이니 좋은 옷 입고 다니라고 해도 항시 허름한 바지저고리만 입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소월이 담배만큼은 최고급을 고집했다. 카이다 한 값이 15전이었는데, 당시 일반 메이플이나 마코같은 담배가 5전이었다고 한다. 왜 그는 그처럼 어려운 생활고 속에서도 고급 담배를 고집하였을까?
그것은 담배를 통해 식민지 조선 청년의 절망과 가정사적 불운의 비애를 조금이나마 태워버리고 싶었던 심리의 소산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그에게 있어서의 담배는 그처럼 풀리지 않는 가슴 속의 응어리[恨]을 태워버리고 싶은, 그리하여 현실을 초월하여 망아(忘我)의 경지에 은거하고 싶은 심리적 도피 기제가 아니었을까 한다. 건강도 재산도 희망마저 잃어, 그가 오로지 향유할 수 있는 건 한 개비의 담배밖에 없었으리라. 피폐한 남루 속에서도 그에게 남아 있는 그의 마지막 문화적 자존심, 끝내 풀리지 않고 짓밟힌 가난한 식민지 청년의 매조키즘(masochism)적 슬픔의 표상, ‘이것이 나에게 남아 있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다’고 외친 그의 무언의 항변, 그것이 그의 고급담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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