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머니께, 지구별에서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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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귀선
시인
어머니! 어머니께서 텃밭 모퉁이에 심으셨던 감나무가 손짓하는 것 같아 다가가 봅니다. 보일 듯, 수줍은 듯, 감잎 뒤에 숨은 감꽃의 소박함 속에서 생전의 어머니를 뵈옵니다. 성황산 기슭에 봄이 무르익었다고 아카시아꽃이 만발하더니 우리 집 경사진 언덕에도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살아실 제 언덕 이 무너질세라 촘촘히도 심었던 찔레가 무성해졌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언덕배기에서 내려오는 그 찔레꽃 바람이 어머니를 더 욱 그립게 하는군요. 말기암으로 자리보전할 때 사람 사는 집 같지 않으니 마당의 풀을 좀 뽑으라 하신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그때는 그저 시늉 이라도 냈습니다만 어머니 돌아가신 후로는 마당뿐만 아니라 집에 들어오는 어귀까지도 풀이 무성합니다. 어머니, 제멋대로 널브러져 풀밭이 되어버린 텃밭과 마당, 상 상이 가시죠? 그러나 저에게는 새로운 만남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들이 이야기를 청해오고 새소 리는 모닝콜이 되어 게으른 잠을 깨운답니다. 늦은 저녁, 풀벌레 들의 공연을 공짜로 듣는 즐거움 또한 재미가 쏠쏠하고요. 예전 엔 별빛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풀벌레 소리가 별빛 바 다와 어우러지면 하늘이 시작되는 자리가 이곳인 듯합니다. 작년엔 어디서 왔는지 항암에 좋다는 까마중과 위장병에 좋 은 애기똥풀이 둥지를 틀었답니다. 아버지 약으로 쓰라고 어머 니께서 보내신 건 아닌지 궁금한 마음입니다. “아야! 애비야~ 이거 봐라! 키가 작아 뭇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밟혀도 이내 꽃대를 세워 작은 꽃을 피우는 채송화를 보거라.” 해마다 어머니 기일이 다가오면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생 각납니다. 이 말씀은 제 시에서도 언급했었는데요, 어머니의 손 자 상현이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랍니다.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이제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 암 말기로 이삼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 던 그날, 가슴에서 밀어 올리는 소리를 삼키며 몰래 울었었습니다. 토끼 눈이 된 제 눈을 바라보시며 “걱정하지 마라. 세상에는 여러 모습의 죽음이 있는데 나는 예정된 시간 동안 삶을 정리할 수 있으니 감사하지 않느냐.”라며 눈가에 맺힌 후회를 닦아 주 시던 그 손길은 제가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로 살아가라는 산상 수훈이었음을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어머니! 천 길 낭떠러지가 그보다 더 깊을까요. 당신의 사랑 을 드러낸 움푹 파인 눈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것은 사랑 의 깊이였습니다.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저 왔으니 거저 주 어야 하는데, 온몸을 암이란 놈이 휘감아 눈밖에 줄 게 없어 미 안하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으시던 어머니…. 피골이 상접한 그 미소는 정녕 이곳에 천국을 이루신 사랑의 미소였습니다. 작은 예수였습니다. 당신의 눈은 온전한 사랑의 눈으로 제 가슴에 등 불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 감잎이 하늘빛에 유난히 반짝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제 곁에 계셨던 것처럼 어머니라는 그 이름은 영원이고 우주인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립니다. 훗날 때가 되어 어머니 곁에 설 수 있다면, 어머니처럼 작은 예수가 되어 뵈옵고 싶은 욕심을 부려 봅니다. 내가 나 되어 감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지구별에서 아들 올림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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