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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지眞知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3월 05일

배귀선
시인

식사食事를 풀어서 말하면 밥 먹는 일이다. 밥 먹는 것도 일이 라 생각하니 어쩐지 밥맛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끼니때마다 밥상을 차려야 한다.
 
세 명이 둘러앉으면 딱 맞을 네모난 밥상의 다리를 편다. 반 찬이라야 김치가 다지만 가끔 반찬가게에서 사 온 콩자반과 건 멸치가 추가되기도 하고 아버지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면 아버지가 좋아하는 갈치속젓과 아들이 좋아하는 소시지가 추가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한 끼에 세 가지 반찬은 남자인 내 가 차릴 수 있는 최상의 식단인데, 여기에 계절에 따라 추가되는 반찬은 여름엔 된장과 풋고추이고 겨울엔 청국장이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청국장을 마트에서 구입하여 끓이 면 아버지는 숟가락도 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변하고 더군다나 치매가 있는데도 청국장에 대한 맛만큼은 잊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이곳저곳 귀동냥을 한 끝에 청 국장 만들기에 도전했다. 생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미 리 알려주기는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적당한 무르기로 콩을 삶는 것도 어려웠지만 늘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실패하곤 했다. 실패 한 콩은 마당에서 사는 닭들이 해치웠다. 예전부터 우리 집의 닭 들은 음식 만들기에 관련된 내 실수를 흔적 없이 처리해주어 그 들과 나는 우애가 깊다. 때문인지 그중 수탉 한 놈은 내가 외출 할 때면 졸졸 따라다니기까지 한다.
 
각설하고, 청국장 만들기에서 가장 신중을 기해야 하는 과 정은 콩 삶기이다. 너무 푹 삶아도 안 되고 그렇다고 덜 삶아져 도 안 된다. 처음에는 콩을 삶을 때마다 엄지와 검지로 무르기 를 측정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삶의 무르기는 어느 정도인 지 생각해보곤 했다. 그런 생각이 실패한 콩처럼 자두나무 아래 에 쌓이고서야 눈으로도 무르기를 알 수 있었고 냄새만으로도 적당히 발효된 상태를 감지할 수 있었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진 청국장은 한 덩이씩 나누어 냉 동실에 보관하는데, 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아버지의 흡족한 표 정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가끔 찾아오는 손님에게 선물이 되 어 작으나마 마음을 나누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청국장을 귀 난 밥상에 올렸다. 나무로 살다가 밥상 으로 사는 네모난 나무 밥상에 아버지가 먼저 앉으신다. 먼저 한반도 땅끝마을 인근 연안 어디쯤에선가 어느 금실 좋은 부부 가 잡았을 멸치를 올린다. 아버지가 멸치 한 마리를 들어 입으 로 가져가신다. 장마철 논둑에서 구사일생 살아나 인연이 된 콩 자반을 그 옆에 놓는다. 어머니의 친구분이 주신 김치를 놓는 것을 끝으로 밥을 푼다. 아버지는 고봉밥, 나와 아들은 그릇전 밥. 사랑은 모름지기 먹히는 것이고 기억되는 것이라 했던 내 다 짐을 잊지 않았는지 소시지만을 좋아하는 아들이 눈치를 보며 콩자반으로 젓가락을 옮긴다. 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밥상 위 생명들을 사랑하는 것은 먹는 것이고 어쩌면 이 과정은 인간이 먹히는 일일 수도 있다는 말을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어려서부 터 했었다. 그 덕분인지 아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이런저런 말을 하면 제법 고개를 끄덕인다. 며칠 전에도 한 톨의 볍씨가 밥이 되기 위해 거듭남의 연속을 거쳤다는 말과 함께 볍씨가 틀을 깰 때 비로소 쌀이 되고, 쌀이 쌀임을 포기했을 때 밥이 되는 것이 라는 말에 견주어 배추가 김치가 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을 했었는데 잊지 않고 김치에도 손이 간다.

그렇다. 그 때문에 밥은 밥이 아닌 생명이며 진리다. 하이데거 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것도 결국은 쌀이 밥 되는 것에 불과하며 기독교의 형이상학이란 것 또한 마찬가지다.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존칭어로 하는 말, ‘진지眞知드세요’는 밥상을 통해 진리를 먹으라는 뜻으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경전이지 싶다. 밥상에 차려진 만남을 통하여 나를 보는 것, 식사食事가 아닌 진지眞知이 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3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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