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공간이 산 자의 평온을 위협해서야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3월 31일
신 영 규/본지 논설위원
우리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수려한 자연을 품은 금수강산에 살고 있다. 산과 들, 바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광은 외국인들에게도 찬사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강산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시야를 가로막는 무분별한 묘지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조상을 모시는 정성은 고결한 미덕이나, 장소와 방식을 가리지 않는 집착이 국토를 ‘거대한 공동묘지’로 만들고 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풍경 중 하나가 바로 봉분이다. 고속도로 주변은 물론 곡식이 자라야 할 논밭 한가운데, 심지어 마을 입구 구릉지까지 들어선 묘지들은 국토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특히 가로등 없는 시골 밤길을 운전하다 전조등 불빛 끝에 갑자기 나타나는 무덤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등줄기에는 오한이 감돈다. 금방이라도 봉분을 가르고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온다. 산 자의 일상 공간이 죽은 자의 영역으로 잠식당한 현실 속에서, 시민의 평온한 일상을 침범한 섬뜩함은 운전자의 안전마저 위협한다. 산 자들의 귀갓길이 왜 불필요한 공포를 걱정해야 하는 오싹한 길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조상의 묘가 왜 굳이 사람들이 오가는 도로변이나 생업의 현장인 논밭에 있어야 하는가?’ 관리가 편해서인지, 풍수지리적 명당 때문인지, 아니면 성묘의 편의성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이를 보는 이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조상을 기리는 전통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화로 자리해 왔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토지가 부족해진 데다 자연경관에 대한 인식까지 달라진 지금, 이러한 전통 역시 시대에 맞게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현재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는 도로, 철도, 하천 등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을 띄우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법은 서류상에만 존재할 뿐,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하기 짝이 없다. 단속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이 사유지라는 명목하에 규정을 어긴 묘지들이 버젓이 들어선다. 지자체 역시 주민 간의 갈등이나 민원을 우려해 적극적인 행정 처분을 꺼리면서, ‘법은 있으나 지켜지지 않는’ 탈법의 풍경이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장묘 문화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법적 규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주요 도로변의 일정 거리 이내에는 어떤 형태의 개인 묘지도 설치할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위반 시에는 즉각적인 이전 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울러 기존에 난립한 묘지들에 대해서도 자연장이나 수목장 등으로의 전환을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하고 유도해야 한다. 선진국 사례를 보더라도 도로변이나 농지에 개인 묘지를 조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사유지라 할지라도 묘지 설치를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며,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공동묘지나 자연장지를 이용하는 것이 상식으로 통한다. 그들에게 묘지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산 자들이 산책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공원과 같은 장소다. 우리도 죽음이 삶의 경관을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산과 들은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기 이전에 우리의 후손이 대를 이어 살아갈 소중한 삶터다. 무분별한 묘지 설치는 당대의 자연을 훼손할 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국토 이용의 비효율과 심리적 부담이라는 무거운 짐을 남기는 일이다. 도로변에서 봉분을 쉽게 볼 수 없는 나라, 공공성과 미관을 함께 고려하는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장묘 문화의 개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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