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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을 보던 눈, 장수의 역사에 빠지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12일
손호성 장수군 국가유산팀장

장수의 역사는 현장에서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시간의 무게를 느껴야 한다. 국가유산 업무를 맡으며 얻은 확신은 이 매력을 전문가나 담당자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군민은 물론 이곳을 찾는 누구나 장수 역사의 깊이와 가치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장수는 마한·가야·백제·신라·후백제의 역사유산이 공존하는 ‘역사문화권 5관왕’의 고장이다. 여러 시대의 흔적이 겹쳐 있다는 것은 고대사의 다양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이 땅에서 삶을 이어 온 사람들의 자취가 오늘도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그 가치는 현장에서 더욱 생생해진다. 고분군 앞에서는 무덤의 규모와 주변 지형을 살피게 되고, 산성에 오르면 왜 그곳에 성을 쌓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토기와 철기에서는 옛사람들의 생활과 기술을 만난다. 조사와 연구로 밝혀진 이야기를 들으면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이 역사의 현장으로 바뀐다.
보는 일은 관심의 시작이고, 듣는 일은 이해를 깊게 하며, 느끼는 일은 가치를 오래 기억하게 한다. 국가유산 행정은 유산을 보존하고 연구하면서 그 성과를 누구나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전해야 한다.
건축직 공무원으로 출발한 나도 장수의 역사를 만나며 달라졌다. 면적과 구조, 공정과 예산에 익숙했던 시선에 역사와 사람을 읽는 마음이 더해졌다. 돌 하나와 토기 조각 하나에도 누가 만들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어떤 삶이 담겼는지 질문하게 됐다. 수치와 도면을 중시하던 이과적 사고에 사람과 시간을 헤아리는 인문학적 시선이 더해진 것이다. 그 놀라움과 감동을 개인의 보람에만 머물게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장수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조사와 연구를 이어 왔다. 2019년 동촌리 고분군의 장수군 최초 국가사적 지정을 이뤘고, 국가유산 보존·정비와 역사문화자원 활용을 위한 국비사업 확보에도 힘을 기울였다. 가야문화유산 조사·정비와 관광자원화, 역사문화권 정비는 묻혀 있던 역사를 오늘의 공공자산으로 이어 가는 기반이 됐다.
이는 주민과 조사·연구자, 관계기관, 동료 공무원들의 노력이 쌓인 결과다. 현장을 지키고, 학술적 근거를 밝히고, 정책과 예산으로 뒷받침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장수의 역사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이제 그 성과는 더 많은 사람의 경험으로 이어져야 한다. 아이들이 자기 고장의 역사를 궁금해하고, 군민들이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며, 방문객들이 다른 유적까지 찾아보고 싶어질 때 역사는 살아 있는 지역의 자산이 된다.
유적은 찾아가기 편해야 하고, 설명은 정확하면서도 쉬워야 한다. 전시관의 유물이 현장과 연결되고, 현장의 궁금증을 해설과 전시로 풀 수 있어야 한다. 확인된 사실은 충실하게 전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앞으로 풀어 갈 질문으로 남겨야 한다. 그렇게 쌓인 신뢰가 장수의 역사를 오래 기억할 이야기로 만든다.
‘역사문화권 5관왕’은 자부심과 함께 책임을 준다. 유산을 보존·연구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 잘 아는 사람은 더 깊이 탐구하고, 처음 접하는 사람은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을 넓혀야 한다. 군민에게는 고장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로, 아이들에게는 생생한 배움의 현장으로, 방문객에게는 다시 찾고 싶은 이유로 장수의 역사가 다가갔으면 한다.
오는 12월 공로연수를 앞두고 국가유산팀장으로서 걸어온 시간을 돌아본다. 장수의 가치를 찾아내고 지키며,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일에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것은 오래 간직할 자부심이다.
장수의 유적 앞에 직접 서서 그 이야기를 듣고, 풍경 속에 쌓인 시간을 느껴 보기를 바란다. 누구나 장수 역사의 매력에 빠져들고, 그 만남이 또 다른 관심과 발걸음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비록 나는 이 자리에서 국가유산 업무를 마무리하지만, 장수의 역사를 밝히고 지켜 나가는 일은 계속된다. 동료와 후배들이 이어 갈 노력, 앞으로 드러날 새로운 역사, 그 가치를 보고 듣고 느낄 사람들을 생각하면 장수의 다음이, 그리고 내일이 기대된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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