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葛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10월 13일
정성수 객원 논설위원/명예문학박사
자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식물이 존재한다. 각 식물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하고 동시에 확장한다. 그중 넝쿨 식물은 스스로 몸을 지탱하기보다 타자에 기대어 상승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생태적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넝쿨 식물로 칡넝쿨과 등나무를 들 수 있다. 칡은 한자‘갈葛’로 표기되며 뿌리를 약용으로 쓰는 식물을 가리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등나무는‘등藤’이라 하여 길게 뻗으며 감아 오르는 덩굴성 목질 식물을 뜻한다. 두 글자를 결합한‘갈등葛藤’은 본래 두 식물의 이름을 나란히 적은 데서 비롯된 말로, 상반된 방향으로 감기며 얽히는 생태적 현상을 언어화한 표현이다. 칡넝쿨은 왕성한 번식력과 강한 적응력을 지닌 식물로, 햇빛을 향해 빠르게 뻗어 주변의 구조물을 단단히 휘감는다. 줄기는 해마다 굵어져 목질화된다. 뿌리는 깊게 뻗어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에 비해 등나무는 유연하면서도 질긴 줄기를 지니고 비교적 완만한 속도로 상승한다. 길게 늘어진 줄기는 공간을 넓게 점유해 그늘을 형성하고, 지지체를 따라 안정적으로 감아 생장한다. 두 식물은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성장하지만, 감아 오르는 회전 방향이 상반된다. 넝쿨 식물의 공통된 특징은 의존과 경쟁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서지 못하지만 단순한 의탁에 머물지 않고,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승한다. 칡넝쿨은 빠른 확장성과 강한 장악력을 통해 주변을 덮으며 영역을 넓힌다. 등나무는 유연한 구조로 공간을 감싸며 지속적인 점유를 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감기는 두 식물이 한 지점에서 만나면 줄기는 교차하며 비틀리고, 생장 압력은 상대를 누르거나 밀어내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완전한 파괴로 귀결되기보다 각자의 생장 원리를 유지한 채 긴장 속 공존을 지속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렇게 상반된 회전성과 얽힘의 구조는 자연계가 단순한 조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서로 다른 방향과 속도를 지닌 생명은 접촉하는 순간 긴장을 형성하지만, 동시에 균형과 지속을 모색한다. 칡넝쿨과 등나무의 생태는 대립과 공존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임을 드러낸다. 이는 인간 사회의 관계와 충돌을 이해하는 상징적 비유로 확장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가치의 우선순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형제간 재산 분배 문제에서 공정한 기준이 엇갈릴 때나 부부 사이에서 생활 방식과 기대가 어긋날 때 또는 직장에서는 성과와 책임의 경계가 충돌할 때 갈등은 발생한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해석이 다르고, 같은 목표를 두고도 접근 방법이 다르므로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긴장을 내포한다. 이때의 갈등은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방식과 신념이 맞부딪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구조적 현상이다. 중국 고사에‘장상지화將相之和’가 있다. 전국시대 조나라 장수 염파廉頗는 재상 인상여藺相如의 공을 시기하여 모욕을 주려 계획했다. 인상여는 나라의 안정을 위해 끝까지 충돌을 피하였다. 마침내 염파는 자신의 옹졸함을 깨닫고 등에 가시를 지고 찾아와 사죄하였다. 이는 개인의 체면보다 공동의 가치를 우선할 때 갈등이 화해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 일화는 후대 병법과 인간관계의 지혜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특히 손자병법에서 강조하는‘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즉 불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의 정신과도 통한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피해야 할 병리적 상태라기보다는 조정과 성숙을 요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방향의 힘이 충돌할 때 관계는 흔들린다. 이해와 양보가 더해지면 긴장은 균형으로 전환된다. 자연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감기면서도 공존하는 칡넝쿨과 등나무처럼, 인간관계 역시 대립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세우고 공동의 질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갈등은 파괴가 아니라 조정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갈등을 제거해야 할 장애로 보지 않고 이해해야 할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갈등은 악의나 적대감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경험과 가치 기준, 처지의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따라서 해결의 출발점은 상대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청이다. 말의 표면적 의미만이 아니라 그 말에 실린 감정의 온도와 망설임, 침묵의 이유까지 헤아리려는 노력은 긴장의 높이를 낮추고 대화의 문을 연다. 이해받고 있다는 감정이 생길 때 사람은 방어를 내려놓고 관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는 문제와 사람을 구분하여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성격을 단정하는 순간 논의의 초점은 해결에서 승패로 이동한다. 그러나 사실의 차이와 해석의 간격, 감정의 상처를 분별해 보면 갈등의 구조가 드러나고 해결의 실마리도 보인다. 무엇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무엇이 서로 다르게 이해된 부분인지, 무엇이 마음을 다치게 했는지를 차분하게 구획하는 과정은 감정의 격류를 이성의 언어로 옮겨 놓는 것이다. 또한, 관계를 지속시키는 공통의 목적을 확인하는 일은 갈등을 조정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온다. 진실한 인간관계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부부는 함께 살아갈 안정과 신뢰를 원하고, 직장 동료는 공동의 성과와 책임의 균형을 지향하며, 사회 구성원은 질서와 안전을 바란다. 이러한 공통의 바탕을 확인하면 양보는 패배가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의미가 바뀐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유지해야 할 가치를 발견할 때 갈등은 대립이 아니라 조정으로 전환된다. 표현의 방식 역시 갈등의 방향을 크게 좌우한다. 단정적 판단과 비난의 언어는 상대의 방어를 강화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중심으로 한 진술은 이해의 통로를 넓힌다. 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바라는 바를 분명히 하되 상대의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는 표현은 대화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서 관계는 옳고 그름의 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존중과 배려의 언어 속에서 회복력을 얻는다. 갈등 해결에는 시간의 작용도 중요하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어떤 설명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 작은 합의를 반복하여 축적하는 과정은 관계를 서서히 회복시킨다. 갈등은 한 번의 대화로 완전히 해소되기보다 이해와 조정의 경험이 쌓이며 완화된다. 결국, 사람 사이의 갈등을 푸는 길은 상대를 변화시키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성숙하게 하는 데 있다. 서로 다른 방향을 지닌 존재들이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해와 절제 그리고 배려의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 속에서 공존의 길은 열린다. 갈등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는 순간 사람 관계는 깊어지고, 대립은 성숙으로 가는 토대가 된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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