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의지, 판사의 간곡한 당부
판사의 간곡한 당부는 범죄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판결이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19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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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들의 삶은 훨씬 고단해서 삶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자살은 국가적 재난이다. 매년 산업재해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사람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 10~39세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2018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3,670명으로 전년 대비 9.7%인 1,207명이 늘었다. 하루 평균 37.5명 정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0대 사망자의 35.7%, 20대의 47.2%, 30대의 39.4%가 ‘고의적 자해(자살)’로 숨졌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로는 ‘정신적 문제’가 첫 번째로 꼽힌다. 몇 해 전, OECD가 36개 국가의 국민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곤경에 빠졌을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 답변 결과 OECD 평균은 88%이고, 한국인은 72.4%만 긍정적으로 답했다. 다시 말하면 국민 10명 중 3명은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 된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심리적인 문제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데 대다수의 우울증 환자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주변인들에게 일종의 신호(사전징후)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인’으로서 이러한 징후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에는 가수 설리와 구하라, 그리고 배우 차인하 등이 두 달여 만에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평소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살 시도자의 10%는 결국 자살로 사망하며, 80%는 1년 이내 자살을 재시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의 절벽 끝에서 맘껏 고충을 털어놓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치유를 모색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막아야 한다. 울산지법 제11형사부 박주영 부장판사는 자살방조미수 혐의로 기소된 A(30)씨에게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 B(36)씨에게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어렵게 성장했다. 어머니는 외도를 일삼으며 가족들의 생계를 외면한 남편과 이혼하고, 10년 넘게 A씨와 A씨 여동생을 홀로 보살펴 왔다. 당뇨를 앓으면서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잦아 제대로 된 일을 구할 수 없던 A씨 어머니는 공장이나 김밥가게에서 간헐적으로 일하면서 살뜰하게 자식들을 돌봐왔다. 정신적으로 큰 버팀목이 됐던 어머니가 지난 2017년 당뇨합병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A씨는 큰 충격을 받았고 직장생활과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신변을 비관하기 시작했다. A씨는 결국 스스로 삶을 등지겠다고 결심하고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이후 A씨는 2019년 8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동반자살을 하자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B씨와 C씨를 울산의 한 모텔에서 만나서 헬륨가스를 마시고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치는 바람에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는 “한 사람이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한 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사연을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비록 늦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여러분의 가족과 동료들, 우리가 듣게 됐다”며 “우리 사회가 여러분들과 같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박 부장판사는 선고 후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계속 살아가달라는 간곡한 당부와 함께 피고인들이 각각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긴, 피고인들을 위해 직접 고른 책 1권씩을 선물로 건네면서 교통비와 식비 그리고 조카들의 선물구입에 사용하라면서 개인 돈 20만원을 책 안에 넣어 전달했다. A씨는 많은 격려와 조언을 듣고 삶의 의지가 매우 강해졌다고 한다. 만성 정신질환자들은 청소년기 무렵부터 크고 작은 정신적 문제를 겪다 점차 증상이 심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는 이들을 도와야 한다. 이들이 조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무리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증상을 관리할 수 있다. “삶에 대한 의지를 가져라”는 판사의 간곡한 당부는 범죄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판결이다. 곤경에 빠졌을 때는 국가와 사회에 위험 신호를 보내주어야 한다. 자살위험에 노출 됐을 경우 국민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사회가 힘을 모으면 막을 수 있는 문제이다. 삶에 대한 의지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두현 교육학박사 시인·전북대 객원교수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19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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