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7-11 14:47:50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뉴스 > 요일별 특집

[문학칼럼-시인의 눈] 그 할머니를 기다리며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04일
ⓒ e-전라매일
셀카 사진을 찍다가 깜짝 놀랐다. 낯선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서늘하다. 예전에 비해 많이 우울해 보이고, 사나워졌고, 거칠어졌다. 주름이 하나둘 늘어 수분 빠진 피부가 탄력을 잃은 거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장난기 섞인 연한 미소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을까? 화난 듯 굳어버린 표정에다가 눈매는 사나워졌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상 사는 일의 크고 작은 문제야 뭐, 대부분 사람이 비슷비슷하다면, 문제를 대했던 내 방식과 태도가 더 큰 문제는 아닐까? 퇴적암처럼 감정들이 쌓이고 굳어져 고단한 지금의 표정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열차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20년 전의 일이었다. 열차 내 위험요소 확인과 고객의 불편 등을 살펴보기 위해 전체 열차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3호 차 객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맨 앞줄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객실 안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여러분, 내가 여기서 쭈욱 지켜보고 앉아 있응게, 이 차장님이 겁나게 친절해부요. 들어올 때 인사하고, 나갈 때 또 인사하고, 내 생전에 이런 사람 처음 본당게. 자, 박수! 박수 쳐줍시다 잉”하자, 갑자기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 후다닥 도망쳐 나왔지만, 그 뒤 몇 년 동안은 늘 유쾌했었다. 어떤 문이 됐건 밀고 들어설 때마다, 또 그 할머니가 안쪽에서 벌떡 일어나실 것 같았다. 덕분에 일은 즐거웠고 승객들에게도 더욱 친절히 대했다. 아,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곱게 늙으셔서 눈매가 선하게 생겼던 할머니의 얼굴이 희미해져 갔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서도 그 할머니는 없을 거라고 믿는 순간부터 삶이 힘들어졌다.
이제 직장의 정년을 1년 남겨두고 있는 지금, 다시 그 할머니가 간절하게 보고 싶다. 물론 우연히 만난다고 해도 알아볼 수가 없고, 아마도 평생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셀카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래, 할머니를 기다리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 할머니는 필요하고, 그래서 지금 할머니는 무척 바쁘실 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으려면 할머니를 기다리는 일을 포기하고, 지금부터 그 할머니 같은 아저씨, 그 할머니 같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비로소 내 입가에 붉은 하트를 그리며 미소가 돌았다.

/김영기 시인
전북시인협회 회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04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지해춘 군산시의원의 생활밀착 의정 “발로 뛰어야 도시가 보인다”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심덕섭호 3년, 변화와 성장으로 미래 열었다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심덕섭호 3년, 변화와 성장으로 미래 열었다  
“전주의 결의, 만주의 승전” 봉오동 전투 105주년 전북서 되살아난 항일의 불꽃  
전주의 결의, 만주의 승전” 봉오동 전투 105주년 전북서 되살아난 항일의 불꽃  
전북 대표 국립전주박물관, 새로운 35년을 열다  
“국정 혼란 속 도민 안정 · 민생 회복 의정활동 총력”  
임실교육지원청, 작지만 강한 교육혁신 중심으로  
포토뉴스
전주 인사동카페 물들인 기타 선율
전주 인사동카페의 여름밤이 기타 선율로 물들었다. 
전주문화재단, 한복문화 확산 거점으로 ‘우뚝’
전통문화도시 전주가 한복문화의 중심지로서 입지를 다시 한 번 굳혔다.전주시와 (재)전주문화재단(대표이사 최락기)이 운영하는 ‘전주한복문화창작소 
전주문화재단,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 개최
전주문화재단이 전통 국악과 인공지능 작곡 기술의 융합을 시도하는 두 번째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을 개최한다. 공모 주제는 **‘ 
전북도립국악원,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선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무용단이 한국 예술단체로는 처음으로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 국립오페라극장에 진출한다. 오는 7월 27일 국악원의 대표 창 
순창군, 제4회 강천산 전국 가요제 참가자 모집… 8월 29일까지 접수
제4회 강천산 전국 가요제가 오는 9월 27일 토요일 순창군 강천산 군립공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가요제는 순창군이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편집·발행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