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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시인의 눈] 그 할머니를 기다리며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04일
ⓒ e-전라매일
셀카 사진을 찍다가 깜짝 놀랐다. 낯선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서늘하다. 예전에 비해 많이 우울해 보이고, 사나워졌고, 거칠어졌다. 주름이 하나둘 늘어 수분 빠진 피부가 탄력을 잃은 거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장난기 섞인 연한 미소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을까? 화난 듯 굳어버린 표정에다가 눈매는 사나워졌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상 사는 일의 크고 작은 문제야 뭐, 대부분 사람이 비슷비슷하다면, 문제를 대했던 내 방식과 태도가 더 큰 문제는 아닐까? 퇴적암처럼 감정들이 쌓이고 굳어져 고단한 지금의 표정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열차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20년 전의 일이었다. 열차 내 위험요소 확인과 고객의 불편 등을 살펴보기 위해 전체 열차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3호 차 객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맨 앞줄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객실 안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여러분, 내가 여기서 쭈욱 지켜보고 앉아 있응게, 이 차장님이 겁나게 친절해부요. 들어올 때 인사하고, 나갈 때 또 인사하고, 내 생전에 이런 사람 처음 본당게. 자, 박수! 박수 쳐줍시다 잉”하자, 갑자기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 후다닥 도망쳐 나왔지만, 그 뒤 몇 년 동안은 늘 유쾌했었다. 어떤 문이 됐건 밀고 들어설 때마다, 또 그 할머니가 안쪽에서 벌떡 일어나실 것 같았다. 덕분에 일은 즐거웠고 승객들에게도 더욱 친절히 대했다. 아,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곱게 늙으셔서 눈매가 선하게 생겼던 할머니의 얼굴이 희미해져 갔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서도 그 할머니는 없을 거라고 믿는 순간부터 삶이 힘들어졌다.
이제 직장의 정년을 1년 남겨두고 있는 지금, 다시 그 할머니가 간절하게 보고 싶다. 물론 우연히 만난다고 해도 알아볼 수가 없고, 아마도 평생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셀카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래, 할머니를 기다리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 할머니는 필요하고, 그래서 지금 할머니는 무척 바쁘실 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으려면 할머니를 기다리는 일을 포기하고, 지금부터 그 할머니 같은 아저씨, 그 할머니 같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비로소 내 입가에 붉은 하트를 그리며 미소가 돌았다.

/김영기 시인
전북시인협회 회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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