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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인구 작가 |
| ⓒ e-전라매일 |
| 우리의 일상에서 잠깐 멈춤이 필요할 때, 나는 전주 덕진 호반을 찾는다. 50여 년 전의 추억이 새록새록 가슴속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야외수업을 이곳에서 받으며 보트를 타고 보들레르(C. Baudelaire)나 워즈워스(W. Wordsworth)를 불러 시심(詩心)에 잠기곤 하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덕진 호반은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에 조선 태조의 시조를 모신 조경단이 보이는 곳에 있다. 봄이면 늘어진 수양버들과 벚꽃 속을 거닐며 5월의 창포에 머리 감는 여인네들의 풍경이, 여름엔 홍련과 백련이 편 갈라 아름다운 여름밤을 수놓는 낭만의 축제가 펼쳐지는 곳이다. 소슬한 바람 안고 아름다운 生을 마친 고엽(枯葉)의 흔적을 따라 길을 걸으면 어느새 건지산의 붉은 단풍들이 만추의 낭만을 읊어댄다. 겨울은 어떤가. 눈 덮인 호반을 가로질러 호젓한 건지산 뒷길을 발자국 뒤로 물리며 걷는 겨울 나그네의 모습…. 덕진의 사계 중 나는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친구들의 소소한 정을 따 담으면서 잊혀 진 시간의 기쁨을 한 곳에 모아 이곳에 여름을 풀어놓으면 밤은 축복처럼 찾아온다. 호수위에 펼쳐지는 음악분수에서 흘러나오는 월광 소나타는 밤의 향연이다. 솟구치는 물줄기와 오색찬란한 레이저 쇼는 힐링(healing)의 한줌, 뜨거운 밤의 열기를 가시게 한다. 물위에 노니는 물오리의 유영을 바라보노라면 이름 모를 새소리와 질퍽한 연향(蓮香)이 어우러져 호반의 밤을 더욱 신비스럽게 한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위에서의 발걸음은 낯선 초행길의 나그네도 심심할 걱정이 없다. 벤치에 앉아 별빛 내리는 풍경 길을 바라보면 사뭇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얼어붙은 마음의 빗장이 저절로 열린다. 꿈꾸던 힐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친 여름밤, 덕진 호반은 영혼을 달래주는 선물이다. 덕진의 밤하늘은 소박하면서도 수려하다.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빛을 찬찬히 눈에 담으면 한 여름을 식혀도 준다. 천년을 지켜온 덕진 호반을 나는 사랑한다. 오늘도 공원에 세워진 夕丁 시인 등의 詩碑에 새겨진 詩를 읽으며 호반을 걷는다. 걷노라면 견훤의 숨소리와 조선의 냄새가 코끝에 묻어오는 듯하다. 이런 덕진 호반의 산책은 우리를 치유해준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누구나 경험하는 명승지에서의 추억이지만, 옛 왕조가 닦은 터 위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힐링의 호반, 덕진을 품은 나는 행복하다.
나인구 작가는 △대한문학 시, 수필 등단 △대한문학작가회장 △전북문협이사 △전북수필감사 △전주문협감사 ▲수상 : 대한문학작가상, 전북수필문학상, 은빛수필문학상, 전주문학상 등 ▲저서 : 시집 <간주곡의 서정>, 수필집 <그런 돌이 되고 싶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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