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 시인의 눈] 마스크와 페르소나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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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서나 공원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TV 속에서도 사람들은 입을 가리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인간의 변형된 얼굴이다. 우리나라처럼 마스크에 익숙한 민족도 없는 듯하다. 하긴 긴 역사의 흔적이나 황사가 뒤덮인 하늘을 본 적 없는 일부 나라에서는 마스크를 하는 것이 몹시 거부감을 느끼는 행위인가보다. 미국 대통령은 적어도 오늘 아침까지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마스크는 고대 그리스어로 얼굴과 사람을 의미한 프로소폰(prosopon)에서 기원한다. 고대 국가 에트루리아(Etruria)에서 ‘페루스(phersu)’로 표기되었고 로마제국 시대에 이르러 ’가면을 쓴 인격‘이라는 뜻의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가 탄생되었다. 결국 마스크와 페르소나는 같은 역사를 가진 언어인 셈이다. 스위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l Gustav Jung)’은 자신의 열등한 무의식(그림자)을 외부에 투사하기 위해서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쓴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마스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을 페르소나의 형태로 분출하는 통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가면무도회, 의적이 얼굴을 가리거나, 우리 고전의 탈춤에서 신분을 숨기는 탈, 등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스크가 익숙지 않은 나라의 역사에 수긍이 갔다. 억압된 욕망을 또 다른 나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니까. 자유분방한 몸놀림과, 존대와 하대의 구분이 필요 없는 상대에 대한 지칭이 평등하며, 자본이 넘쳐나고, 심지어 자신을 위해 총기의 휴대가 자유로운 사람들이니 말이다, 우리도 이제 마스크 필요 없는 나라이고 싶다. 맑은 공기와 밝은 정치, 얼굴 가릴 것 없는 평형과 위와 아래, 남녀의 평등, 마스크 벗고 환하게 보여줄 미소와 덕담이 넘쳐나는 힘 있는 민족임을 자랑하고 싶다.
/이재숙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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