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신기루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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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들머리를 코로나19라는 괴물에게 옴싹 빼앗긴 채 벌써 4월이다. 올부터는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려 했던 정초의 계획일랑 깡그리 젖혀두고 집에 콕 들어박혀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난 두 해는 건강을 잃고 몹시 허덕거렸다. 건강하겠다고 시작한 운동과 다이어트식이 지나쳐 대상포진을 앓더니 그로 인해 몸이 여기저기 말썽을 부렸다. 급기야 몽골여행을 떠나기로 한 이틀 전에는 비파열뇌동맥류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몽골의 하늘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두 번이나 갔다 온 몽골에 또 가려고 했던 것은 고비사막을 누비며 신기루를 체험해보고 싶어서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게 신기루다.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면 잡히기는커녕 사라져버린다는 걸 빤히 알면서 왜 그토록 그 현상을 보고 싶어 했는지. 황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듯 환호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저 막연히 신기루라는 아득한 거짓의 실체를 체험함으로서 내가 부딪히는 허상을 바로 보거나 아예 무시해버릴 수 있는 도력이라도 지니겠다는 것이었는지. 병상에서도 사막의 끝에서 아른거리는 신기루를 떠올리며 몽골로 떠난 일행들을 부러워했다. 비행기 티켓을 사고 비자를 내며 설레던 마음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가 높은 가지에 열린 신포도라고 자위하며 몽골의 풍경을 생각할 때면 입에 저절로 신물이 고이기도 했다. 어쩌자고 손이 닿지 못하는 높은 가지의 탐스런 포도가 눈에 들어오는 걸까. 지치고 목마른 사막의 길손들에게 마치 오아시스처럼 아득히 보이는 그 현상같이 내게도 한 자락 눈꺼풀을 씌우고 싶은 걸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 사람들의 점잖은 기우일 뿐, 두뇌와 문명이 다투어 발달하는 이 시대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없지 않은가. 고층 아파트를 힘도 들이지 않고 평지인 양 오르내리며 살아가는 시대인 걸. 세상살이에 지쳐 허우적대던 형제가 보이스피싱에 홀린 적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이라며 ‘수백만 달러를 너에게 보내겠다. 맡아 달라. 그런데 세관에 내야할 돈과 비행기 삯이 없으니 보내 달라’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하였다. 처음엔 의심 했으나 아픔의 핵심을 건드리는 수법과 동병상련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술수에 넘어가 상당히 많은 돈을 보내고 말았다. 제 돈이 없으니 자식과 부모형제의 알탕갈탕한 돈을 거둬 보낸 것이다. 질책하는 말에 그가 말했다. ‘절박해보지 않은 너희가 내 속을 어찌 알겠느냐. 나는 그만큼 절박해 봐서 그를 돕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울부짖었다. 수천 달러를 보내면 수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수악한 꼬임에 넘어간 형제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삭막한 사막에서 지열로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오아시스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아른거리는 호수와 야자수 숲 그늘이 신기루라는 걸 미처 몰랐던 것이다. 위장된 눈물에 현혹되어 함께 눈물 콧물 범벅이며 지푸라기라도 잡듯 아른거리는 신기루에 부질없이 속아 넘어간 것이다. 신기루를 보고 싶어 하는 건 마음에 자리 잡은 엉뚱한 허상이 아니다. 흔들리는 마음의 기둥 같은 오아시스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신기루를 보고자 하는 것조차 목마름에서 비롯한 심사인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멀리 떠 있는 공중누각일 지라도 헛발질이라도 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곡진한 바람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신기루는 거친 사막에서 가장 절박한 순간에 오아시스 모양으로 보이는 것 아닐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멀리서 봄날의 아지랑이마냥 아른아른 신기루가 나타나 나를 현혹시킬지 모를 일이다. 눈꺼풀을 부비며 난감한 봄날을 바로 바라봐야겠다.
• 시작노트
오늘도 창밖 하늘을 바라보며 코로나가 깨끗이 사라질 내일을 위해 두 손을 모읍니다. 방안에 잡혀 있으면 글이라도 잘 쓸 일이지 그렇지 못함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시간, 봄꽃들이 피고지고나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겠지요. 새 잎이 돋아나 세상을 초록으로 꾸미겠지요.
• 약력 * 수필가・시인 * 저서 《꿈꾸는 달항아리》 외 4권 * 전북문학상 임실문학상 등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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