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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내 작품의 누드모델 - 수필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3년 01월 02일
창안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벽에 옷이 걸려있다. 날지 못한 새처럼 벽에 달라붙어 있다.

화요일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난 후 남편에게 내 작품의 누드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청을 한다. 남편은 흔쾌히 허락을 해 준다. 나는 화요일마다 특별한 작품을 만든다. 특별한 작품이니 힘도 특별히 많이 든다. 그래서 나는 화요일 아침이 되면 몸 준비를 단단히 한다. 생각나면 먹는 비타민도 꼭 챙겨 먹고, 밥이나 과일 등 먹으면 힘이 나겠다 싶은 것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먹는다. 마음 준비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잘 만들 수 있다고, 재미있게 만들자고, 맛있는 작품을 만들자고 스스로를 응원한다. 자, 이제 작품을 만들어 보자.
누드모델이니까 발가벗기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남편은 온몸을 내게 맡긴다. ‘네 멋대로 하라’이다. 겉옷을 벗기고, 속옷을 벗기고, 마지막으로 양말을 벗길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모델도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남편은 산이다. 산에는 나무와 꽃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온갖 동물들과 새 그리고 나비가 날아온다. 산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남편도 그렇다. 남편에게 배우려고 아이들이 찾아온다. 요즘은 건강이 더 좋지 않아 모든 걸 정리했다. 평생 한 길만 걸어온 남편은 이제야 쉼표를 찍었다. 편안하게 오래 그 자리에서 쉬기를 바란다.
남편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는 목발을 짚고 있었으나 그다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더 불편해질 거라고 했다. 처음 만난 그 순간이 가장 건강한 날이었다. 그의 말대로 보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점점 더 나쁜 쪽으로 진행되었다.
지금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갈 때 그의 몸속에 있는 힘도 시간을 따라갔다. 강물은 되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힘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내 손길이 그에게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갔다. 이제 그는 눈물을 닦을 힘조차 없다. 하지만 그는 육체적 건강이 나빠졌을 뿐이다. 정신적 건강은 누구보다도 강하다. 어떤 순간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그는 이제 큰 산이 되었다.
나는 그 큰 산을 모델로 화요일마다 특별한 작품을 만든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해 놓아야 할 것들이 있다. 화장실 문 바로 아래에 경사로를 놓는다. 작품을 화장실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작품을 만들 때 모델은 수동휠체어를 탄다. 그것은 밖에서 타고 다니는 휠체어보다 조금 작다. 화장실 문이 작기 때문이다. 천으로 된 휠체어가 젖지 않도록 방수천으로 덮어 씌운다. 이동식 리프터를 이용해 누드모델을 수동 휠체어로 옮겨 태운다. 화장실로 들어갈 때부터 긴장이 된다. 여유 공간이 양쪽으로 2cm 정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휠체어가 들어가면 화장실이 꽉 찬 느낌이다. 뒤에 있는 욕조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 하지만 새것이라 없애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손님이 오면 쓸 수도 있어 그냥 두었다. 내가 작품을 만들 때는 의자가 되어주어 고맙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내게 욕조의 난간은 아주 편안한 의자이다. 모델은 지금부터 휠체어에 앉은 채로 1시간 20분 가까이 포즈를 취해 준다. 힘들기는 모델도 마찬가지이다.
모델은 항상 어깨에서 바람이 술술 나온다고 한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줄이 긴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준다. 바람은 쉬이 잠들지 않는다. 몸속 아주 깊은 곳까지 따뜻해져야 잠이 든다. 물뿌리개로 온몸에 물을 뿌려주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일주일 동안 물맛을 보지 못한 몸뚱이는 가뭄이 든 논바닥처럼 메말라있다. 가뭄이 해갈되려면 비를 흠뻑 맞아야 한다. 모델의 몸에 든 가뭄도 물을 흠뻑 머금어야 한다. 바람이 잠들고 가뭄도 해갈되면 모델의 몸이 신호를 보내준다. 온몸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준비가 아주 잘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초벌 작업을 한다. 온몸에 비누칠을 해 놓고 머리에 샴푸를 칠한다. 나는 두 손으로 빠지는 곳이 없도록 신경을 써 가며 마사지를 해준다. 잘 불어야 다음 작업인 밀기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모델은 상당히 까다롭다. “빈틈없이”를 몇 번이나 노래하는지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작업이니 멋있는 작품이 되고 싶은 마음일거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잔소리로 들리는 건 내가 아직 내 마음을 덜 비워서일까?
“우리 둘이서 웃으며 살아가보자 … 자네와 난 보약같은 친구야 …”
갑자기 모델이 노래를 부른다. 이건 아주 좋은 신호다. 모델이 내 작업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늦가을 잘 익은 호박처럼 두리뭉실한 배를 밀기 시작할 때쯤이면 내 숨소리는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손의 힘도 떨어진다. 새참을 먹고 싶다. 꼭 이맘때쯤이면 엄마가 새참이 담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내 마음속 길로 걸어온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바람이 전국적으로 불었다. 시골의 초가지붕은 슬레이트로 바뀌었다. 지붕만 바뀌었을 뿐이다. 나무로 만든 부엌문은 아무리 조심스럽게 열어도 “끼이익” 소리를 저 먼저 울어댔고, 바닥이나 부뚜막은 흙으로 되어 있었다. 부뚜막 위에는 참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가마솥 두 개와, 은색으로 빛나는 양은솥 한 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문 쪽에 있는 가장 큰 가마솥은 물을 데울 때 쓰고, 그 옆에 있는 참한 가마솥은 밥을 할 때 쓴다. 또 그 옆에는 국을 끓일 때 쓰는 양은솥이 있다.
가장 큰 가마솥의 입 벌린 아궁이에는 장작이 한 아름 물려있고 시뻘건 불길은 고래로 무섭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 솥의 솥뚜껑 사이로는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안방에는 샘에 있던 붉은 고무통이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는 착착 개어진 옷들이 무더기무더기 놓여있다. 개어진 옷들은 낡아 꿰맨 흔적이 그림처럼 곳곳에 있다.
두세 살 터울인 육 남매는 다 고만고만하다. 엄마는 하룻밤에 목욕을 모두 시키기가 버거워 이틀로 나누어 시킨다. 엄마가 하는 설 준비 중 가장 큰 일은 육 남매를 목욕시키는 일이다. 행여 감기라도 들까 엄마의 몸과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장작불로 데워진 방은 절절 끓었다. 엄마는 붉은 고무통에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뜨끈뜨끈한 물을 부어 놓고 때를 밀기 시작한다. 때를 다 밀고 나면 더러워진 물을 양동이에 담아 버리고 새 물을 담아와 헹궈준다. 뽀독뽀독 때를 벗기고 나면 얼굴이 사과처럼 발개진다. 엄마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등은 흠뻑 젖어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내가 마지막으로 목욕을 할 때면 엄마의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어린 나는 엄마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때를 미는 손놀림이 느려졌다. 꼭 지금의 내 모습처럼.
목욕이 끝나고 나면 벗어놓은 옷들이 산처럼 쌓인다. 그래도 엄마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웃었다. 그 엄마가 새참을 갖고 내게로 온다. 머리에 이고 온 광주리를 내려놓고 보자기를 들면 엄마의 웃음이 담겨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나는 새참이다.
다시 힘이 난다. 첫 번째 밀기 작업을 하면 진한 회색빛 때가 둘둘 밀린다. 물뿌리개로 물을 준 다음 두 번째 밀기를 시작한다. 둘둘 밀리는 진한 회색빛 겉 때와는 달리 속 때는 맑은 회색빛으로 돌돌 밀린다. 작업이 끝날 때쯤이면 환풍기를 돌린다. 작업장에 서린 김이 안개처럼 사라진다. 엄마도 김과 함께 새참 광주리를 이고 돌아간다.

드디어 작업이 끝났다. 모델 몸의 물기를 닦아주고 조심스레 휠체어에 타고 있는 모델을 안방으로 옮긴다. 이동식 리프터를 이용해 방바닥에 앉힌 다음, 속옷을 입혀주고 나서 겉옷을 입혀주고 양말을 신겨준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스킨을 발라주고 머리도 빗겨준다. 오늘 작품도 잘 만들었다. 참 멋있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애썼다.”
어라? 작품이 내게 인사를 한다. 세상에서 자기가 만든 작품에게서 인사를 듣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남편의 얼굴에 보름달이 뜬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우리 육 남매를 목욕시켜주고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도 엄마처럼 그런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본다. 나는 일주일 뒤 새참을 머리에 이고 오는 엄마를 또 만날 것이다. 힘들다. 힘들지만 힘듦과 기쁨은 비례하니 난 큰 기쁨을 맛보고 싶다.
목욕을 하고 나면 몸의 때만 벗겨져 나가는 게 아니라 마음에 쌓인 때도 벗겨져 나가 새의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내가 목욕 한 것은 아니지만 한결 내 어깨가 가벼웁다.
내일은 수요일이다. 월요일을 잘 보낸 화요일 같은 수요일이다. 내일 아침 하늘이 해를 낳으면 기꺼이 내 작품의 누드모델이 되어준 남편과 가볍게 ‘수목금토일월’ 날아야지.
창밖으로 새 한 마리 날아간다.


/허창열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3년 0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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