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자전적 에세이] 교룡산성 11 설악과 동해안을 지나며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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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시인 전라정신연구원 이사장
▲1975년 8월 14일, 말복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14일 나는 소위 대학 졸업여행을 가게 됐다. 여행 코스가 우선, 설악산과 동해안이라는데 호감이 갔지만, 무엇보다도 더 큰 뜻은 그간 우리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문과 청춘을 이야기하며 낯설게 지내왔건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만은 그간에 못다한 정담과 우의를 돈독히 하며 길고도 짧았던 대학생활을 마무리 해보자는 데 더 큰 의의를 갖고자 했다. 이른 아침부터 43명의 일행은 스쿨버스에 몸을 싣고 설악산을 향한 3박4일의 여정에 올랐다. 버스가 전주시가를 벗어나 호남 고속도로를 집어들자 나는 비로소 여행의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 ‘생활이 인생의 산문이라면 여행은 인생의 시’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여행은 우선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신나는 해방감과 새로운 곳의 풍물에 대한 경이와 동경이 있어 우리를 더욱 들뜨게 한 모양이다. <외설악> 아침 8시에 전주를 출발한 버스는 수원 옆 신갈에서 강원도 횡성과 양양을 지나 밤 8시에야 설악산에 도착했다. 산과 산을 잡아 돌아 외설악의 계곡을 지날 때엔 한 여름의 후덥지근하던 열기도 간곳이 없고 어디서 불어오는지 서늘한 냉기가 오싹오싹 감겨오는가 하면 연기처럼 골짝 골짝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안개와 구름은 올올한 산정들을 중천에 둥둥 조각배처럼 띄워 놓았다. 일행 중 누군가는 그 장쾌한 풍경에 벅찬 가슴을 가누지 못한 채 ‘오! 설악이 구름에 머물레라!’ 하고 사뭇 감격해 했는가 하면, 우뚝우뚝 깎아지른 듯이 솟아있는 암산과 벼랑은 흡사 병풍에서나 보는 동양화의 한 폭을 연상케 했다. ▲8월 15일 <비룡폭포> 새벽 5시. 산보를 나온 일행 몇은 용이 승천했다는 비룡 폭포를 오르기로 했다. 두 개의 구름다리를 지나 약 2km의 계곡을 한창 오르니 희뿌연 안개 속에 새하얀 비룡의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태산은 아직 깊은 정적 속에 잠들어 있건만 50m 될까한 높은 벼랑에서 한줄기로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폭포수는 그 비범한 위용으로 우리들의 넋을 앗아 갔는지 모두들 말을 잃고 그저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울산암(蔚山岩)> 조반을 마친 일행은 신흥사를 거쳐 울산암에 올랐다. 평소 건강에 자신 있던 나였건만 수백 미터의 층층 계단을 오를 때에 어찌나 경사가 급하고 험하던지 현기증이 일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구름 또한 시시각각으로 몰려왔다 흩어졌다 해 우리들의 기념 촬영을 방해했다. ‘네 영혼이 피곤하거든 산으로 가라’던 독일인들의 노래처럼 과연 상봉에 올라 발 아래로 흘러가는 구름과 무한하게 펼쳐있는 광대무변의 태산준령들을 바라 볼 때의 통쾌함을 어디다 비길 것인가. 우리는 이처럼 웅장하고 숭엄한 울산 암의 상봉에서 8월의 눈부신 태양을 받으며 광복 3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새삼스레 금수강산을 우리에게 주신 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계조암을 지나 낙산사로 향했다. <낙산사 의상대> 짭조롬하고 비릿한 생선 내음을 뚫고 버스는 속초를 지나 낙산사에 도착했다. 의상대를 동해 제일의 조망대라 한다더니 과연 일망무제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탁 트인다. 망망한 대해, 그 위에 끝없이 부풀어 오른 수평선, 아! 이것이 동해란 말인가! 그 뿐이랴, 짙은 노송의 청아한 운치며 그 아래 하얗게 펼쳐있는 낙산 해수욕장의 맑은 물과 모래펄은 과연 관동팔경의 으뜸이라고 생각됐다. <강릉 경포대> 6km의 모래펄과 소나무 숲 그리고 맑은 물로 이름 높은 경포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다 저녁 후 우리 국어교육학과 학생들은 바다 구경에 나섰다. 일부 남녀 학생들은 사장(沙場)에다 불을 지피고 앉아서 무엇인가 신나는 게임들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원한 해풍과 철석거리며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전복회에 소주를 곁들이는 밤바다의 낭만을 누렸다. 경포대를 동양의 나포리라 한다더니 정말 경포대의 바닷물과 모래는 맑고 깨끗했다. 이른 아침 배를 타고 근해를 둘러보아도 어찌나 바닷물이 투명한지 마치 어항 속을 바라보듯 바다 밑의 모래며 수초와 물고기들이 그대로 환히 드러나 보였다. ▲8월 16일 <성류굴> 오후 3시쯤 경북 울진에 있는 성류굴에 도착했다. 인간이 창작해 낸 예술미가 아무리 위대하다 할지라도 어찌 이에 비할 수가 있으리오. 자연의 오묘한 신비와 위력 앞에 나는 그만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생성 연대가 2억 5천만년이나 된다는 성류굴, 이는 분명히 자연이 이룩한 미의 극치였다. 좁은 굴을 비집고 들어가니 찬 기운이 휙 하니 전신을 감고 돌아 금시 땀이 갠다. 다섯 개의 큰 못과 15개의 광장을 지날 때마다 굴천장에서 쭉쭉 뻗어 내려온 돌고드름들의 모습들이 마치 고대 희랍이나 로마시대의 궁전 기둥 같기도 하고, 무슨 괴물들의 형상, 아니 지상 최대의 조각물 전시장이라고나 할까? ‘무능한 이성이여, 겸손하라.’던 파스칼의 『팡세』 한 구절이 생각난다. ▲8월 17일 <남해대교> 포항의 아침은 맑았다. 어제 밤 자정이 넘도록 이곳 산호여관의 옥상에서 시원한 포항의 밤바다 바람을 맞으며 일행 전원이 즐거운 오락 시간을 보냈다. 오전 중엔 경주에서 불국사와 화랑의 집 박물관등을 구경하고서 곧장 부산을 거쳐 남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해가 서산에 걸릴 무렵에야 교각이 없는 다리로 그 규모가 동양 최대라는 남해 대교에 도착했으나 일정에 쫒긴 우리는 겨우 기념 촬영만을 끝내고 순천 광주를 거쳐 전주로 향했다. 버스는 크략숀을 세차게 울리며 어둠속을 쏜살같이 달렸건만 나는 자꾸만 차의 속력을 재촉하면서 눈에 삼삼이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해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이리해 8월 14일 전주를 출발한 나의 졸업여행은 그간 전국을 일주하면서 빈약하고 옹졸하기만 했던 나에게 많은 깨우침과 교훈을 안겨준 채 막을 내리게 됐다. (1975.9.30. 영생대학 학보 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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