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개비 사랑
폐선과 잡초와 따개비의 동거!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7월 10일
산바람 잔잔히 흘러 고만고만한 봉오리 푸르게 푸르게 물들 이는 날, 볕 깊은 입암골에 든다. 새소리 들으며 오수에 든 오솔 길 깨어나 걸음을 반기고, 골바람 앞세운 생강나무 냄새가 가쁜 산행을 진정시킨다. 입암골은 내소사 입구에서 오른편 샛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 르는 곳이다.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떤 문화재가 손타지 않은 자연만큼 아름답고 귀할까. 내소사를 향한 걸음은 자연스럽게 입암골로 향하게 된다. 오솔길 옆 물웅덩이에서 개구리들 몇몇이 더위를 식히고 있 다. 봄에 왔을 때는 짝을 찾지 못한 개구리들의 울음이었는지 입암골에 드는 내내 시끄러웠었다. 암컷 한 마리에 수컷 네댓 마 리가 뒤엉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시큰둥한 모습들이다. 푸르게 흔들리는 바람이 발끝까지 적시는 산 중턱, 와불처럼 비스듬히 누워 있는 폐선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 었는지 페인트가 벗겨져 있고 이곳이 마지막 정박지인 양 방향 키가 꺾여 있다. 어느 순간부터 바다의 시간을 열어 잡초를 받 아들였을까. 구멍 난 선체 밑바닥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 이 자라고 있다. 인동 바다에 있어야 할 배가 산 중턱에 있는 이유도 궁금하거 니와 제 몸을 열어 생명을 심은 폐선의 내력이 궁금해진다. 폐선 주위를 둘러본다. 뱃머리 아랫부분에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따 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듯 석회화되어 가고 있다. 폐선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다. 폐선과 잡초와 따개비의 동거. 사랑이란 주제는 우리 곁에서 늘 함께했다. 이들은 어떤 인연으로 언제부터 자신을 열어 하나가 되었을까.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주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이들의 삶이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바람이 실어 온 송진 냄새에 능선 쪽에 시선을 둔다. 소나무 한 그루 팔이 부러진 채 늘어져 있다. 지난겨울, 바람에 맞선 탓 이려니 생각하며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든다. 저수지 물이 남 아 있는 중심을 향해 던진다. 돌멩이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내려오는 길, 산밭에서 참을 먹고 있는 부부가 보인다. 무심 코 걸음을 옮겨 그 곁으로 다가간다. 인기척에 남편인 듯한 사 람이 밀짚모자를 고쳐 쓰며 바라본다. 눈가의 주름으로 미루어 칠십 대는 되어 보인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산 중턱 폐선의 내 력에 대해 묻는다. 그는 마시던 막걸리 잔을 내게 건네면서 말을 잇는다. 원래는 근처 바다에서 작업하던 배였는데 저수지를 양식장 으로 활용하기 위해 배를 산 중턱까지 옮겼다고 한다. 외지인인 지 근동의 주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입암골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가두어 민물 양식장을 계획했다는데 동네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혀를 찬다. 잡을 수 없는 바람에서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나름 사연 없는 게 있을까만 꿈을 이루지 못한 폐선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선다. 더하여 뱃전에 붙은 수많은 따개비가 생각에서 쉬이 떨쳐 지지 않는다. 폐선에 붙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리 아프고 슬픈 일만은 아닌 듯하다. 석회화되도록 배를 떠나지 않은 사랑을 생각하니 그렇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가져왔던 따개비 하나 주머니에서 꺼내 내 손등에 붙여본다. 폐선의 심성이 아니라는 듯 떨어진다. 서로 에게 풍화되어 가는 모습이 한 선생으로 다가오는 날이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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