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책을 품은 도시, 전주… 한 정책이 불러온 변화의 힘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5월 19일
도시는 삶의 무대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다. 어느 도시나 도서관은 있고, 책을 읽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시민과 여행자 모두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경험으로 확장된 사례는 흔치 않다. 지금, 전주가 그러한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의 관광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전주의 ‘도서관 여행’이 소셜 언급량에서 전년 대비 19% 증가하며 ‘뜨는 도시’로 선정됐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책을 읽는 것이 멋지다’는 인식이 번지면서, 전주의 도서관 여행은 더 이상 조용한 취향의 일탈이 아닌, 새로운 세대 감성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텍스트힙(Text+Hip)’이라는 신조어가 이를 대변한다. 책을 읽는 행위가 단지 지적인 활동을 넘어 문화적 스타일로 확장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문화 현상이 우연히 생겨난 흐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전주에는 다른 도시와 달리, 책을 매개로 시민과 도시의 관계를 재구성하려는 오랜 정책적 노력이 있었다. 단순히 도서관의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왜 책이어야 하는가’, ‘왜 도서관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통해 도시 정체성의 방향을 다시 짚은 결과다. 특히 건지산 숲속도서관, 자작자작 책공작소가 있는 완산도서관, 책기둥도서관 등은 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이자 경험이다. 단순한 독서 공간이 아니라, 사유와 휴식, 관계와 환대가 흐르는 장소로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공공의 영역에서 책과 사람, 공간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재구성한다. 도서관이 더 이상 ‘조용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장소’로 진화하면서 시민은 도시에 환대받는다는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곧 도시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정책은 수치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통해 평가받아야 한다. 전주의 도서관 정책은 수치로도 입증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도서관 여행 참가자가 빠르게 마감되고, 외지인과 기관들이 벤치마킹에 나서며, 도서관을 일상과 여행, 업무의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은 단지 유행을 넘어선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는 ‘도시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도시정책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모든 도시가 전주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주의 사례는 도시정책이 어떻게 시민의 일상과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오늘날처럼 자본 중심의 민간 문화공간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공간의 가치는 더 빛난다. ‘공공’이 ‘무중력 지대’로 기능하며, 시민 누구나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기 삶의 중심을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도시는 단순히 높은 빌딩이나 교통망만으로 품격을 갖추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품격은 그 속에 사는 이들이 얼마나 환대받고, 연결되고, 성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전주의 사례는 도시가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으며,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깊고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이제 다른 도시들도 물어야 한다. 우리의 도시는 시민에게 어떤 마음을 주고 있는가. 우리는 책을 통해 어떤 삶을 제안하고 있는가. 전주의 ‘책의 도시’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도시가 인간의 감정과 철학, 일상의 기쁨을 품을 수 있음을 웅변한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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