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의당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1월 12일
형효순 수필가
바람 끝이 차다. 아직 눈이 남아있는 응달진 삼의당 부부의 묘는 쓸쓸했다. 겨우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곳을 너무 늦게 찾았다. 마음깊이 사모했던 분을. 삼의당과 나는 아득히 250여년의 거리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삼의당이 살았던 남원 유천 마을 옆을 자주 다녀서 이거나, 삼의당의 삶이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일까. 김삼의당의 한 시를 처음 접한 날 가슴이 먹먹했다. 같은 농촌 여성으로서 지금 마주 했다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하고. 삼의당은 조선 영조 때 김해 김씨 탁영濯纓 김일손의 후손 김인혁의 딸로 태어나 남원부 서봉방 지금의 유천 마을에서 살았다. 18살이 되던 해 한 마을 동갑내기,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진주 하씨 담락당 하립과 결혼했다. 삼의당이라는 당호는 남편 하립이 지어 방문 앞에 걸어주었다고 한다. 결혼 한 첫날밤에 남편과 시를 주고받을 만큼 시와 서에 능했던 삼의당은 남편 하립이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하립은 애석하게 그러지 못했다. 결국 가세가 기울어 선영이 살고 있는 진안 마령면 방화리로 삼의당 33세에 이주를 하고 그곳에서 55세로 일기를 마쳤는데, 시문집 99편 264수의 시와 22편의 산문집을 남겼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황진이, 매창 보다도 더 많은 한시를 남겼음에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번성하지 못한 집안 배경과 후광이 없어서 일 것이다. 그 누구와 비해도 문학적으로 손색이 없다고 한다. 다행히 남원시의 후원으로 석천 조수익 선생님의 한글 번역본이 발간되었다. 덕분에 삼의당의 삶을 깊이 볼 수 있었다. 남원에서 생활은 고난스러웠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남편의 급제를 위해 비녀와 머리까지 잘라 팔면서 남편의 출세를 갈망하였지만 연속되는 이별과 별거, 기다림에 지쳐 끝내 아래와 같은 시를 짓게 된다. 相思苦 그리워라 相思苦 너무도 그리워라 鷄三唱夜五鼓 닭 세 번째 우니 날이 밝아오네 脈脈無眠對鴛鴦 잠못 이루며 원앙금침 대하니 淚如雨淚如雨 눈물 비 오듯 하네 눈물 비 오듯 하네
오래전 내가 겹쳐 보인다. 7남매 맏며느리 농촌의 현실은 어렵기만 했다. 분가를 할까 하고 남편이 서울로 떠났다. 마을에 단 한 대 공동 전화가 이장님 집에 있었지만 내가 사용할 수는 없었다. 소식을 듣고 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편지뿐이었다. 일기장엔 눈물 겹겹 그립네. 외롭네. 언제 오려나, 남편이 내려왔다 헤어질 때마다 갈미산 모퉁이에서, 남원역 앞에서 많이도 울었다. 결국 남편은 취직을 못하고 다시 내려왔다. 어쩌다 그때 일기장이나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우리가 이만큼 사랑 했었나 풋풋했던 시절 순수한 마음이 보여 지금의 나를 반성해본다. 삼의당의 시문에도 이별하거나 같이 있을 때도 남편과 주고받은 애틋하고 아름다운 화답시가 많다. 물론 우리부부의 편지와는 아주 많이 다른.
滿天明月滿園花 하늘에 밝은 달이 뜨고 정원에 꽃 만발해 花影相添月影加 꽃그늘 진 곳에 달빛이 비추네요 如月如花人對坐 달 같고 꽃 같은 분 마주 앉으니 世間榮辱屬誰家 인간 세상 영욕은 뉘 집 이야기 인가요
三更明月仲春花 삼경의 밝은 달이요 꽃피는 중춘에 花正華時月色加 꽃피어 아름답고 달빛도 밝구려 隨月時看人又至 달빛 따라 꽃구경 하는데 당신까지 오니 無雙光景在吾家 우리 집 이런 광경 다시는 없겠구려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도 급제를 못한 생활은 경제적 궁핍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진안으로 이주한 그곳에서는 남편의 출세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대부분 자연과 풍경에 대한 시를 많이 남겼다.
洛花滿庭上 뜰 가득 꽃이 지는데 童子且莫掃 아이야 부디 쓸지 말거라 片片散餘春 꽃잎파리 조각마다 봄기운 남아있고 箇箇點芳草 한 잎 한 잎 모두가 향기로운 봄풀이네 蹴去付當鷰 처마 끝 제비가 발로 차가고 含飛有山鳥 산새가 물고 날아다니네 愛惜不厭看 아무리 구경해도 싫증이 나지 않아 紗牕捲廉調 일찍 비단 창문의 발을 걷었네
마령면 방화리 마을을 찾았을 때는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삼의당이 살았던 터에는 까대기가 지어져 무청시래기다발만 주렁주렁 찬바람에 제 몸을 비틀고 있을 뿐 적막했다. 낯선 사람을 향해 짖는 개소리마저 쓸쓸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고 했던가. 마을 어귀 수 백 년 된 팽나무 아래 앉았다. 어쩌면 삼의당도 이곳에 자주 왔을지 모른다. 끝내 이룰 수 없었던 남편의 출세,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어린 두 딸, 기울어가는 집안, 안으로 삭이기에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마 이 팽나무는 알고 있겠지.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시를 짓던 삼의당의 끊임없었던 열정 앞에 겨우 수필집 두 권을 내고 글을 쓰네 못쓰네 어쭙잖았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삼의당은 알까. 200여년이 흐른 뒤 한 농부의 아내가 애틋한 마음을 안고 서있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내동산 너머로 해가진다. 봄꽃이 피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없는 팽나무에게 약속을 해본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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