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4월 08일
유인봉 시인 / 수필가
고향 집 앞마당 오른편으로 둔덕 같은 텃밭이 하나 생겼다. 큰 키를 자랑하던 호두나무도 허리까지 묻혀 있다. 오래전부터 아름드리 밤나무 대여섯 그루가 서 있던 둔덕이었지만, 지금은 세를 넓혀 제법 밭뙈기만 한 둔덕이 생긴 것이다. 그중 절반가량은 수롱골에 있는 뒷산이 어느 해 여름 장마 때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나서 유실되어 밀려온 토사가 둔덕을 확장해 놓은 것이다. 유년에 할머니와 함께 쌓았던 유년의 기억도 아래채와 함께 토사에 쓸려가고 말았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장마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듯 아침부터 거세게 빗줄기를 쏟아붓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산사태가 나고 도로가 끊기고 계곡마다 황토물이 무섭게 넘쳐났다. 억수같이 내리는 빗줄기는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그칠 줄을 몰랐다. 비바람이 거세지고 냇가의 물길도 한층 거칠어져 금세 둑을 넘을 기세였다. 네 가구가 사는 고향 마을 상지담은 쉬지 않고 쏟아지는 빗소리에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아래채 뒤켠으로 좁은 도랑에도 물이 점점 불어나고 황토물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밖에서 뜬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형님께서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아무래도 몸을 좀 피해야겠다고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물이 뒤꼍에서 마당으로 넘쳐들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어머님과 아버님을 안전한 정수 형님 댁으로 피난시켰다. 그리고는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황토물과 함께 토사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지막한 돌담을 메우더니 이내 돌담을 넘어 마당으로 토사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손쓸 겨를도 없이 거센 황토물이 아래채를 가두더니 순식간에 지붕을 덮쳤다. 아래채가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거센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기세를 불린 토사는 마당을 덮고 집 앞 논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집 앞 논이 마당보다 어른 한 길 정도 높낮이가 있어 마당을 거쳐 간 토사가 그곳에 몸을 부리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산에서 실려 온 토사는 앞 논에 동산을 이루고 난 후에야 비가 잦아들고 산사태도 멈추어 섰다. 산자락이 절개되어 무너져 내리면서 흘러내린 토사가 물길을 막고 막힌 물길이 다시 밭으로 방향을 틀면서 고향 집 마당으로 새로운 물길을 내버린 것이다. 날이 밝자 토사가 밀려난 산자락은 깊게 맨살이 뿌리까지 드러나고 몇 개의 밭뙈기를 휩쓸고 오는 동안 밭과 밭의 경계는 지워지고 말았다. 농작물은 이미 흙 속에 매몰되어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그나마 사과나무는 그 거센 물살을 온몸으로 버티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당 뜰 방 앞에 쌓인 흙만 삽으로 겨우 걷어내고 방도를 찾아보기로 했다. 날이 밝자 면에서 직원들이 다녀가고 주위에서도 걱정이 되었는지 찾아와 안부를 묻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다음 날에는 행정에서 응급 복구를 위한 굴삭기를 보내주었다. 마당과 논에 산처럼 쌓인 토사를 걷어내는 일이었다. 본채 뒤켠에 우물도 장독대 주변도 온통 밀려온 토사로 모래밭을 이루고 있었다. 쌓인 토사를 모아 처리할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외부로 실어내는 일은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아예 엄두가 서지 않았다. 고민 끝에 밤나무 둔덕에 있던 자리에 더 높게, 더 넓게 둔덕을 만들기로 했다. 복구 작업은 그렇게 중장비를 이용해 진행하였다. 밤나무가 있던 나지막한 둔덕이 작은 동산 크기와 넓이의 공터가 생겨났다. 활용을 고민한 끝에 둔덕 위에 터를 닦고 하우스를 들이고 텃밭을 만들기로 했다. 여름이면 배추를 심고 어느 해는 고구마를 심었다. 외양간과 화장실, 그리고 쇠죽솥이 있고 군불로 지펴진 아랫방에서 할머니와의 추억을 간직한 아래채는 소실되고 자취를 감추었지만, 텃밭은 철철이 채소와 고구마를 내고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식탁에 올려주었다. 비닐하우스는 고추나 옥수수를 말리고 겨울 김장 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비록 산사태로 인한 물난리로 고향 집 아래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둔덕을 넓혀 풍성한 텃밭 하나 얻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다. 지난 시절 아들의 방탕을 통해 아내와 내가 더 성숙해지고 단련됐던 것처럼 저마다 닥친 위기나 고통이 늘 잃어버리는 시간만은 아니요. 반대로 또 다른 유익을 얻는 새로움도 주어졌다. 물난리를 겪으면서 마을 이웃들의 따뜻한 위로와 손길이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아 따뜻함으로 전해 온다. 마른장마가 끝나고 집중호우가 예상된다는 날씨 예보가 자막으로 뜨고 있다.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우리는 얼마나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자연재해를 당해 본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태풍과 함께 오는 이번 집중호우도 순탄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4월 08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