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4.4시위 유공자 4인포상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4월 12일
전대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어느 나라에서나 그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거나 다친 사람 그리고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훈장을 수여하여 그 뜻을 기리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의무로 되어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한국의 경우는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 중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온 것은 역사의 가르침이다. 바다 건너 일본은 해적을 동원한 침범이 남해안과 서해안을 중심으로 극성을 부려 어떤 역사학자의 통계로는 980여회 외적의 침범을 받은 나라로 그려져 있다. 단순히 이 수치로만 보면 한국의 역사는 약소국의 대명사처럼 옹졸하고 가련해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고구려 시절에는 저 넓은 만주 평야를 누비며 지금의 동북 삼성을 손아귀에 쥔 적도 있었으며 그 힘찬 기상은 광개토대왕의 거대한 비석과 장수왕의 묘소 등 만주 일대를 지배했던 산 역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고구려 이후 발해를 세운 유민들의 도약은 가장 큰 궁궐터만 보아도 짐작하고도 남는다. 현재의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변방 정부라고 호도하며 동북공정의 이름으로 자기네 역사로 편입 하려는 수작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윤관의 6관 개척은 역사에 기리 남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다. 일본 해적의 침범은 소수 규모였지만 해안의 피해는 막심했다.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대마도에 본진을 둔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서 세종대왕은 이종무를 대장으로 대마도를 정벌한 사실이 있다. 1년여 대마도에 주둔하며 해적질을 하지 않겠다는 항복문서를 받고 되돌아온 것은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 짝이 없다. 그 때 대마도를 복속시키는 것이 전쟁의 순서인데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순수함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마 대마도를 조선에 편입시켰다면 성리학에 몰두하여 무반(武班)을 천시하고 문반만을 내세웠던 유약한 조선으로 전락하여 한일합방의 치욕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하여 조선은 일본의 강압에 시달리며 36년의 긴 세월 온갖 핍박을 받았지만 끈질긴 민족성은 3.1만세운동과 6.10만세 그리고 광주학생운동의 민족적 궐기로 조선의 자유 독립을 쟁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상해임시정부를 만들고 광복군을 조직하여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 여단을 전멸시키는 전공을 세운 것도 우리 선열들의 피의 대가로 이뤄진 것이다. 이들 선열에 대해서 광복을 이룬 대한민국 정부는 훈장을 수여하고 높은 뜻을 대대로 전하고 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한 용사들의 전공도 잊지 않고 기린다. 거기에 독재정권과 싸우며 민주화를 위해서 온 몸을 던졌던 4.19와 5.18의 민주투사들에게도 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공로를 기리는 보훈 행정도 계속한다. 국가보훈부에서는 해마다 돌아오는 4.19혁명 기념일이 되면 4.19공로자를 포상하는 행사를 가진다. 매년 끊임없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년에도 어김없이 공로자 포상을 위해서 대상자의 신청을 받아 심사를 진행했다. 4.19혁명에 앞장섰지만 보훈부가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탈락한 분들의 애타는 심정은 옆에서 보기에도 안타깝고 분노까지 생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데모 현장 사진을 찍었을 테지만 66년 전 그 시절은 카메라 가진 사람은 만 명에 하나나 있었을까? 설혹 사진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데모하면서 사진 찍는 자는 정상이 아니다. 데모를 주도하거나 주동했다는 증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4.19직후에 발행된 대학신문이나 고교 교지에서 자기 학교의 시위 실황을 스케치한 것이 있으면 행운이다. 나는 당시 전북대 정치과 3학년인데 용케 전북일보와 전북대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사진과 이름이 기록되어 이론(異論) 없이 인정받았다. 그런데 같이 이름이 보도된 몇 학우들이 세상을 떠나는 통에 공로자 신청을 할 수 없었다. 완주군수, 전북도의원 등 공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의 가족을 찾는 것은 일반 개인으로서는 어려웠다. 나는 당시의 전북대신문을 국가보훈부 권오을 장관에게 보내어 이들을 정부에서 발굴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화의 기수를 발굴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 아닌가? 다행히 이번 포상 후보자 명단에 이현기 채진묵 박영호 3인의 이름이 올랐다. 원용인은 유일하게 생존자다. 이들의 공로는 모두 대학생 최초의 4.19데모인 4.4시위로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명시되었다. 전북대 4,4시위는 전국 최초의 대학생 시위였지만 지방대의 열악성 때문에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하고 고대 시위만이 부각되었다. 전북대나 고대나 모두 민주화를 위해서 자신을 던진 시위로 인정받았으며 더 많고 폭 넓게 유공자들이 발굴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할 뿐이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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