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舞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4월 26일
형효순 수필가
몸이 마음을 나 몰라라 한다. 마음 따로 몸 따로 투덜대는 둘 사이를 화해시킬까 싶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어느 정도 둘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아 퇴원을 했다. 오랜만에 외출을 할까 하고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이럴 수가. 거울 속에 우리 어매가 나를 보고 있다. 난 분명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했으며 아버지를 닮아 그런지 ‘너는 나보다 아부지를 더 좋아 한다’며 섭섭해 하시던 어매였다. 점점 어매를 닮아가니 좋아해야 할지 씁쓸한 것인지 애매한 마음이다. 외출을 그만두고 TV를 켰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이 살풀이춤을 추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춤사위가 곱고 우아하며 교태스럽기까지 하다. 하얀 수건을 흩뿌려 등에 걸치고 돌며 사뿐한 버선발로 나비처럼 춤을 추는 선생의 춤사위는 한이 멈칫 멈칫 서려있다. 한 바퀴 살짝 돌리는 몸짓에서 갑자기 우리어매가 보였다. 두 번 돌자 이번에는 시어머니 얼굴도 보였다. 친정어머니의 춤을 본 것은 열 두 살 쯤 이었을까. 마을 뒤 꼴깜산에 어머니들의 화전놀이가 시작되었다. 화전놀이터로 구경을 갔다. 남색치마에 살구색 저고리를 입은 우리 어매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춤까지 추고 있었다. 진달래꽃 무더기 앞에서 얼어붙은 나는 정말 우리 어매가 맞는지 다시보고 싶은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왜 그렇게 어매의 아리랑이 슬프게 들리는지 왜 우리 어매의 남색치마가 살랑이도록 춤을 주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진달래꽃잎을 수북하게 발밑에 따서 버리고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나도 알 수 없는 눈물만 뚝뚝 흘렸다. 진달래꽃도 내가 왜 저를 그렇게 뜯어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시어머니 춤을 본 것은 시집온 이듬해 봄이었다. 이곳도 마을 여자들 화전놀이가 정산에서 열렸다. 고동색 치마를 팔랑이며 시어머님도 아리랑을 불렀다. 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지 이미 알 수 있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그냥 애처로웠다. 신나는 노래로 시작해도 끝내 한풀이 같은 곡조로 끝을 맺는 어머니들. 화전놀이 장구 앞에서는 암묵적인 약속이 하나 있다. 울지 않고 노래 부르기다. 너나 나나 모두 힘든 세상살이 한사람이 울면 모두 따라 우니까. 고운때가 벗겨지고 적당하게 헌 댁이 되자 화전놀이는 내 차지가 되었다. 어느 해 봄, 나도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처럼 장구 앞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었다. 그러나 끝내 금기를 어기고 질금질금 울고 있었다. 백세를 바라보는 친정어머니가 요양원에 계신지 몇 년이 지났다. 시어머님 요청으로 친정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마당가운데서 만난 두 분은 부둥켜안고 훌쩍훌쩍 울었다. “사둔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볼을 비비고 서로 어깨를 다독였다. 그날 밤 두 분은 밤새 불을 끄지 않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정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귀가 어두워 지셨는데도. 무슨 인연이 깊은지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신 해는 달라도 제삿날이 같다.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를 찾아와 그만 우리 갑시다 하셨을까. 평소 둘 사이가 좋았으니 굽은 등 시원하게 펴고 훠이훠이 자유롭게 다니시면 좋겠다. 살풀이춤은 끝이 났다. 어머니들 생각도 끝을 내고 싶어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는데 오늘 왜 이럴까. 가수가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초근목피 그 시절~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끝내 화전놀이마당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 평생 애증으로 산 어머니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슬프되 슬프지 않는 춤까지 덩실덩실 추고 말았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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