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16일
유인봉 시인 / 수필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어둠에 묻혀 옵니다. 기다리고 있던 선교사님이 가져온 승합차에 짐짝처럼 몸을 포개고 공항을 빠져나갑니다. 클락으로 향하는 길은 거친 포장길입니다. 이십여 분을 달려 클락 시내를 들어섭니다. 도심에는 한국어로 된 간판이 눈에 많이 보입니다. 앙헬레스는 한인촌입니다. 한인들이 사업차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느낌으로는 부지런한 한인들이 이 지역 경제를 주도하는 것 같습니다.
차 머리는 다시 큰 도로를 벗어나 고가도로 아래에 있는 낮고 습하고 어둑어둑한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한참을 돌고 돌아 골목 막다른 곳에 차를 세웁니다. 아나누스교회가 있는 목적지입니다. 손수레 하나가 편도로 지나갈 정도의 비좁은 흙길에는 군데군데 알전구만 깜빡거리며 거미줄 같은 골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얼기설기한 판자촌 같은 느낌입니다. 전력 사정도 열악해 보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난민촌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엠마우스 선교관에서 늦은 밤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튿날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일행은 다시 아나누스교회를 찾았습니다. 예배를 준비하는 청년들과 아이들이 일찍부터 자리하고 있습니다. 찬양과 율동으로 예배당이 후끈합니다. 후원 단체의 지원으로 벽걸이 에어컨이 걸려 있지만 전력 사정으로 가동할 수 없습니다. 함께 뛰고 찬양하다 보니 땀이 줄줄 흐릅니다. 찌는 듯한 더위도 이 뜨거운 예배 열기를 이길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예배를 준비하고 인도하는 동안 어른들과 현지 아이들이 팀을 나누어 골목 전도를 나섭니다. 1960년대 초 한국전쟁 직후 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난민촌을 연상케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가 맨발입니다. 옷차림도 허름하기 짝이 없습니다. 골목에서 줄넘기하며 노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형편은 매우 안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그들의 모습과는 달리 아이들의 표정은 매우 명랑합니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인사도 건네고 손을 흔들며 맑게 웃어 줍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자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로 합니다. 예배의 자리로 초청하는 초대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아이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옵니다. 처음 교회 문턱을 밟은 아이들이 22명이나 됩니다. 예배가 끝나도 저녁 늦게까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줄 모릅니다. 아쉬운 눈빛들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와 정리하는 기도 모임을 갖고 이틀 밤을 보냅니다.
날이 밝자 아침 일찍 승합차에 몸을 싣고 산중턱에 사는 아이따족 마을과 학교를 방문합니다. 준비해 간 프로그램으로 아이들과 함께 현지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큰 도로에서 30km 정도 깊은 산중으로 들어섭니다. 군데군데 산마을을 지납니다. 빨래들이 옷가게 진열대처럼 잘 정리되어 걸려 있습니다. 산허리를 돌 때마다 닭 농장이 눈에 보입니다. 방목 중입니다. 특이한 것은 개집만 한 크기의 우리에 한 마리씩 닭이 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산중에서 나오는 임산물을 채취하거나 닭과 달걀을 시내에 내다 팔고 양식이나 생필품을 구매하여 생활합니다. 토착 종족이었으나 많은 외세의 지배를 받다 보니 문명과 지배 세력에 밀려 산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영역을 보호받고 있습니다.
아이따 학교에 도착하니 군인들의 경비가 삼엄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실은 우리 선교팀을 보호하기 위하여 파견된 군인이었습니다. 청년들은 학교 마당에서 100여 명의 아이를 모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어른들은 교실에서 학급을 맡아 만들기와 꾸미기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합니다. 풍성하게 준비해 간 간식을 받아 든 아이들이 환성을 지릅니다.
학교 일정을 마치고 산족 마을을 찾아 준비해 간 쌀과 의료품을 전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따뜻한 물품을 전하고 내려오는 우리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일행 모두 기쁘고 행복한 모습입니다. 영혼의 치유를 받은 느낌입니다.
다시 차는 수풀이 무성한 외딴곳으로 들어섭니다. 강가에 벽돌공장이 서넛 보입니다. 공장 옆에 양철지붕을 이고 있는 창고 같은 주거 시설이 보입니다. 차 소리를 듣고 아이들과 주민들이 몰려나옵니다. 시골에서 가난을 이겨 보려고 도시로 나와 갈 곳 없는 유랑민들입니다. 벽돌공장에서는 그나마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거처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답니다.
움막 수준입니다. 집 안에 화장실도 보이지 않습니다. 방이라 해야 창고 바닥 수준입니다. 예배당은 밖에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못 구멍 숭숭한 녹슨 함석지붕을 얹어 놓은 형태입니다. 무릎 높이만큼 벽돌로 사방을 두르고 걸상 몇 개를 놓아두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이곳 주민들과 매주 정기적으로 예배하는 처소입니다.
우리 모두 손을 맞잡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했습니다. 준비해 간 물품을 전달하고 돌아서는데 고사리손을 흔드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눈에 밟힙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나누스교회에서 수요저녁예배를 드리기로 합니다. 도착하니 이미 많은 아이와 청년들이 찬양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저녁 준비에 분주합니다. 준비해 간 학용품과 놀이기구, 그리고 가방과 옷가지를 풀어 놓고 달란트 시장을 열었습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이나 청년들에게 평소 나누어 준 달란트로 그들이 물품을 삽니다. 산더미처럼 쌓였던 물건들이 금세 동이 납니다. 옷과 가방, 액세서리가 선풍적인 인기 품목입니다. 달란트 시장을 마치고 모두 다 함께 저녁 예배를 드립니다. 언어는 달라도 마음과 분위기는 하나입니다. 늦은 저녁도 함께합니다. 어느덧 한 가족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작별의 인사를 나눕니다.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 명 한 명 꼭 안아 줍니다. 아이들이 작은 손편지를 건넵니다. 뭉클합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짧은 만남과 이별까지 행복한 시간입니다. 이곳 아이들에게 무언가 전하고 손에 쥐여 주고 가르치려고 생각하고 왔는데 오히려 가슴 한가득 채우고 갑니다. 배우고 갑니다. 또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의 기쁨과 감동이 행복한 여운으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필리핀 선교를 마치고 클락에서.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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