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5-09 06:49:19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뉴스 > 칼럼

교이불어(敎而不語)

자신의 눈과 귀로
직접 사실을 확인하게 하고 생각을 고쳤으니,
말하지 않는 방법으로 더 나은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19일
ⓒ e-전라매일
말하지 않고 가르친다.
북송시대 신종(神宗) 희녕(熙寧) 연간(1068~1077년) 어느 날,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당시의 재상 왕안섯(王安石)을 방문했는데 마침 왕안석이 집에 없었다. 왕안석의 집을 둘러보던 소동파는 우연히 책상 위 벼루 밑에 깔린 미쳐 완성하지 못한 시 한 수를 발견했다.
어젯밤 서풍이 불더니
뒤뜰의 국화 꽃잎이 떨어져
마치 황금이 땅에 가득 쌓인 것 같구나
이 시를 본 소동파는 생각했다.
‘가을이 되면 서풍이 부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화는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오상지골(傲霜之骨)‘이라 가을이 아주 깊어서야 시들기는 하되 꽃잎을 떨어뜨리지 않는데, 어째서 꽃잎이 황금이 땅에 깔린 것같이 쌓였다고 했을까? 왕공께서 참으로 멍청하구나. 실로 우스운 일이야!’
그래서 소동파는 그 시 아래에다가 이렇게 적어놓고는 자리를 떴다.
가을꽃은 봄과 달라 떨어지지 않거늘
시인께 잘 살피시라
한 말씀 드리노라
왕안석이 돌아와 시를 계속 쓰려다 소동파가 다녀간 것을 알게 되었다. 소동파의 시를 본 왕안석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젊은 친구가 지나치게 자부심이 강하군. 내 이 친구에게 실질적인 교육을 시켜 주리라.‘
얼마 후 왕안석은 황제에게 소동파를 호북성 검주(芡州)의 단련부사(團練副使)로 보낼 것을 건의했다. 소동파는 이 조치를 자신을 무시한 것이라 생각해서 몹시 불쾌해했다. 그래서 부임해간 뒤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 진계상(陳季常)과 뒤뜰에서 국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셨다. 그런데 며칠 동안 큰 바람이 불어 뒤뜰의 수십 그루나 되는 국화에 꽃잎이 하나도 매달려 있지 않았다. 황금이 땅을 수놓은 듯, 온 마당을 가득 메운 국화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이를 본 소동파는 잠시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계상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국화 꽃잎을 보더니 왜 그렇게 놀라는가?”
소동파는 왕안석의 집에서 국화에 관한 시를 자신이 고쳐 쓴 일을 이야기 하면서, 이제야 어떤 지방에서는 국화도 꽃잎을 땅에 가득 차도록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진계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동파는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작년 이곳 검주로 발령이 나자 나는 왕형공(王荊公.-1079년 왕안석은 좌부사관문전대학사(左仆射觀文殿大學士)에 임명되면서 형국공에 봉해졌기 때문에 왕형공이라 불렀다)이 내가 자신의 단점을 지적한 데 앙심을 품고 보복을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형공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어리석었음을 누가 알았으랴. 얄팍한 재주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으니, 이번 일로 크게 깨우쳤네. 무릇 모든 일에 겸손하고 신중해야지, 섣불리 자신의 총명함만 믿고 큰소리치다간 남의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지.”
그 뒤 소동파는 왕안석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엥겔스는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방면의 학습이건 자기가 범한 잘못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빨리 배우는 것은 없다.”
소식이 국화 시를 함부로 고치는 잘못을 범한 것은 아는 것이 많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왕안석은 그를 말로 가르치려 하지 않고 국화 시에서 말한 그 옛날 자신이 있었던 지방으로 소식을 발령 냄으로써 자신의 눈과 귀로 직접 사실을 확인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젊은이의 생각을 고쳤으니, 말하지 않는 방법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은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정랑 언론인
前 조선일보 기자
(서울일보 수석논설위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19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사설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요일별 기획
인물포커스
교육현장스케치
기업탐방
우리가족만만세
재경도민회
기획특집
봄철 안전대책 추진으로 화재예방 ‘온 힘’  
김정숙 화가, 3여 년 동안 미공개 작품 70여 점 선보여  
제11회 부안마실축제의 ‘대 변신!’  
도산 위기 내몰린 지역 건설경기에 심폐소생  
제1회 군산시 관리감독자 교육으로 산재 예방한다  
2024 무주방문의 해 자연특별시 무주, 특별한 적상!  
살아서 돌아오라, 살려서 돌아오라!  
김제시, 안전한 식·의약 환경조성과 감염병 예방 집중  
포토뉴스
올해 무주산골영화제, ‘한국이 싫어서 라이브’ 개막작 공개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올해 개막작과 함께 총 21개국 96편의 상영작을 공개했다.오는 6월 열리는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는 개막작으로 장건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수상작 발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민성욱·정준호)가 지난 7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시상식을 열어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부문 
<국립군산대학교 미술관> 전북지역 대학미술관 최초 제1종 등록미술관 승
국립군산대학교(총장 이장호) 미술관이 제1종 등록미술관 승인을 획득했다. <사진>전북지역 대학미술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승인받은 미술관 
‘꿈, 새가 되어 날아든다’ 특별전
전주역사박물관(관장 김선옥)은 오는 3일부터 8월 4일까지 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꿈, 새가 돼 날아든다’ 특별전시를 개최한다. <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자원활동가 지프지기 발대식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27일 전주교육문화회관 공연장에서 450여 명의 지프지기가 참여한 가운데 지프지기 발대식을 진행했다. <사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덕진구 견훤로 501. 3층 / mail: jlmi1400@hanmail.net
발행인·대표이사/회장: 홍성일 / 편집인·사장 이용선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