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숫단에서 아파트까지
청춘들은 간절히 찾고 있다 소나기 들판에서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수숫단을 짓는 흙 묻은 지도자를 산골소년의 어깨처럼 김이 오르는 따뜻한 지도자를.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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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가뭄이 석 달째다. 소나기라도 흠뻑 내리길 바라며 집을 나섰다. 가로수 단풍잎마다 깃 치는 소리로 바쁘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례식처럼, 만남을 기약하는 청춘의 졸업식처럼 숭고함과 경쾌함이 함께 매달렸다. 더 이상 물들 수 없는 단풍잎새. 일제 황홀한 문을 졸업하고 황량한 새 거리로 나선다. 저 구르는 낙엽 따라 나도 떠난다. 벌은 달콤한 꿀을 따고 문학기행은 새 영혼을 따는 거. 4시간 여 고속도로를 달린다. 적혈구 같은 수많은 상·하행 차량들, 누구와 동행하며 누구를 만나러 가는 중일까? 달리는 고속도로의 둥지는 휴게소다. 화장실도 보고 한 잔의 커피로 긴장을 푸는 곳. 그렇다면 삶의 둥지는 집이겠지. 사랑을 나누고 숙면하고 다음 세대를 낳아 키우는 보금자리. 점심 후 양평 두물머리에 잠시 들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각기 다른 온도로 만나는 곳. 연인들은 땅 위에서, 청둥오리와 검은물닭은 물 위에서, 월척의 강준치는 물속에서 만남을 누리고 있었다. 첫 만남처럼 두물머리는 차분한 여백으로 충만했다. 내 생의 과거와 현재 미래도 묵묵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잔잔한 호수 같은 물의 둥지를 짓고 있었다. 왜 두물머리엔 물안개가 늘 피어오르는가? 만남과 헤어짐의 입김이 끝없이 흐르기 때문인가? 북한강을 거슬러 황순원 문학관으로 달렸다. 소나기 마을엔 먹장구름이 천의무봉처럼 흐르고 있었다. 국민단편 낭만적 휴머니스트라 불리는 그의 작품 중 <소나기>에 젖어본다. 산골소년과 전학 온 서울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순수함과 맹랑함의 만남. 그들은 개울가 징검다리에서 만난다. 이내 먼 산을 동경하며 들판을 달려가다 소나기를 만난다. 입술이 파랗게 질린 허약한 소녀를 위한 소년의 비그이-집짓기 장면은 눈물겹다.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수숫단을 날라 덧세워 수숫단을 마련하는 소년.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그 순수한 한 구절은 나를 후끈 감쌌다. 그러나 이 시대 청춘들의 무거운 고통을 생각하니 이내 식어버렸다. 순수예찬이 되레 바보스런 사회는 아닌지? ‘사랑/취업/내집마련’이라는 청춘의 꿈. 그 평범한 꿈이 절망과 포기로 추락하는 시대적 현상이 나를 짓눌렀다. 며칠 전 연상의 한 지인께서 근심스런 얼굴로 와선 물었다. “자녀가 어떻게 되죠?” “나이가 몇이죠?” “집 한 채씩 장만하여 장가보내려면 만만치 않겠어요.” 혼자 남아 생각하니 지난날 회자된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딸 둘은 금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이오.’ 그 원인을 ‘피케티지수’는 말한다. 가계와 국가의 순자산(부동산/금융)을 국민소득(GDP)으로 나눠 산출한 지수다. 높을수록 불평등 수준이 심한 나라. 2019년 대한민국은 8.6이었다. 선진국(4.4~6.6)에 비해 월등히 높다<한국은행>. 신혼부부가 ‘수숫단에서 아파트까지’, ‘셋방살이에서 내집마련까지’ 고통의 기간이 가장 길다는 슬픈 지수다. 그러니 출산율도 최저요 자살률도 최고다. 헌법은 말한다. ‘국가는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라고. 나라살림은 누가 하는가? 지도자들이 앞다퉈 공약하는 ‘미래의 먹거리 사업’ 운운이 먼저는 아니다. 미래의 주역 청춘들에게 공정한 기회의 출발선과, 저렴한 보금자리를 선물하는 게 우선 아닐까? 그대들의 자식이 다섯이라면 특정 손가락에게만 세습의 특혜를 주며 가정살림을 꾸릴 수 있을까? “바람 찬 캠퍼스 졸업 날 / 검은 가운을 입은 까치 한쌍이 / 높다란 은행 나목에 집을 짓는다 / 철근 같은 마른가지를 물고 / 이 가지 저 가지 궁리하며 / 엮어가는 사랑의 종탑 / 하늘의 축복이 맨 처음 울리는 집 / 해달별 초인종을 달고 / 풍파의 내진 설계까지 / 행복 프리미엄 꽤나 붙겠구나” - 「둥지」 부분 어느새 소나기 마을을 빠져나오자 먹장구름도 따라온다. 욱하고 청춘의 소나기가 터질 것 같다. 청춘들은 간절히 찾고 있다. 소나기 들판에서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수숫단을 짓는 흙 묻은 지도자를, 산골소년의 어깨처럼 김이 오르는 따뜻한 지도자를.
/왕태삼 전북시인협회 이사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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