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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쇠망하는, (자중지란自中之亂)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05일
ⓒ e-전라매일
어떤 조직이나 나라를 와해시키는 데는 자체 내 내홍도 큰 몫을 차지한다. 상대에 대한 비난과 불화가 편 가르기를 가져와 분열을 촉진하는 원인이 되어 마침내 회복할 수 없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신봉함으로 인하여 생긴 갈등이 파키스탄과는 남남이 된 인도의 분열(1947), 파키스탄 정부는 공용어인 우르두어를 동파키스탄에 사용하도록 강요했지만 이를 반대하며 자신들의 자부심 강한 뱅골어를 사용함으로써 촉발된 분쟁이 방글라데시로 재 분열되었고(1973), 민족 불교가 성행했던 실론 역시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분리 독립한다(1948). 물론 인도 자체가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인도가 독립한 이후에 나타난 분열상이지만 말이다.
대한민국 역시 신탁통치 찬반 논쟁이 남북을 갈라놓은 분열의 또 다른 예가 된다. 춘추시대 패권국이었던 제·진·초나라의 멸망과 영원한 대제국 로마가 붕괴한 이유를 보면 외부의 변수보다 내부 요인이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위정자들의 탐욕이 가세하여 서로 이간질하고 싸우면서 국력을 소진했음이다. 우리의 역사도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흉노와 연계하여 자신들에게 대항할 것을 두려워한 한나라 무제는 고조선을 선제공격한다.
그렇지만 이계상(백관의 수장) 참, 조선상(대신) 노인, 노인의 아들 최 그리고 도둑을 잡아야 할 우거왕의 아들 장항이 그들과 한패가 되어 멸망을 재촉하였다. 참이 보낸 자객에 우거왕은 살해되고, 수도 왕검성에서 최후까지 항쟁한 성기 장군도 최와 장항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한나라에 패하고 만다. 이렇듯 한나라의 이간계와 이에 손잡은 고조선 내의 동조 세력은 분열을 부추기고 실행하여 결국 2225년간 지속되어 온 고조선은 멸망하고 만다(BC 108). 그 뒤 고구려 역시 같은 전철을 밟는다.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죽자 그를 이은 장자 연남생이 요동 순찰을 나간 사이 동생 건과 산이 형을 체포하려 하므로 당나라로 도망하여 생을 의탁한다. 결국 당나라 장군이 된 생의 고구려 침공과 보장왕의 항복으로 한반도의 자존심이 작은 개미굴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지게 된다(668년). 백제의 의자왕은 왕권을 강화하겠다며 적자와 서자 41명을 장관급인 좌평에 임명함으로써 협력을 이끌어내야 할 귀족들에게는 ‘부여씨의 나라일 뿐’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무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성충·윤충·흥수 등 충신들을 가두거나 유배 보내며, 온고라는 후궁에 빠져 사치와 향락에 도취해 있을 때 권력을 쥔 왕자들 간의 갈등도 한몫했다. 이는 백제가 공격을 받았을 때 귀족들이 사병을 내놓길 거부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웅진성 성주 예석진이 의자왕을 체포하여 소정방에 바친 것 또한 심각한 내부갈등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660년).
“분열하여 지배하라. 더 좋은 구호이다!”라는 괴테의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인가! 신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왕위에 오른 경덕왕(742)은 왕권 강화를 위해 견제 세력인 상대등(귀족회의 의장)을 세 차례나 교체하고 왕의 오른팔 격인 시중(내각의 수상) 역시 6~7회나 바꿔 귀족들의 반감을 샀다. 그러던 중 왕이 죽자 8세인 아들이 혜공왕에 즉위하였지만 불만이 싹터 경덕왕비는 죽임을 당하고, 나약한 혜공왕 이후 성골 대신 진골 출신이 왕권을 차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심한 내분과 치열한 암투가 진행됐음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887년(진성여왕 3년)의 대흉작에도 불구하고 가혹한 세금징수로 상주를 중심으로 한 원종과 애노의 농민반란은 제압하기도 어려운 세력으로 저항했다. 여기에 지방 호족 또한 중앙 정계 진출을 위한 성벽 구축과 사병 양성 등으로 온통 힘을 쏟고 있었다. “하나로 뭉치지 않는 한 모든 권력은 약하다.”는 프랑스 격언이 이에 꼭 맞는 진리가 되고 있다. 넷째를 후계자로 세우자 이에 불만을 품은 장자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된 후백제의 견훤왕은 그곳을 탈출하여 고려 왕건에 귀의함으로써 멸망을 자초한 부자간의 갈등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으로 구성된 발해는 중앙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지방 세력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건국 228년 만에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된다(926년). 그리고 고구려를 부흥하겠다던 궁예 역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관심법으로 자신의 처자식까지 죽이는 등 악행을 저지른다.
이에 배극렴과 신숭겸 등이 중심이 되어 그를 몰아내고 궁예가 평소 동생 삼았던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건국한다(918년).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을 이룬다.”는 고사나 “단결은 힘이다.”라는 호메로스의 진리를 실감하게 하는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고려 역시 동일한 과오를 저지른다. 불교를 숭상하는 권문세가와 이를 배척하는 성리학 출신의 신진사대부 간의 갈등이 있던 중 이성계 장군의 위화도 회군 이후 사대부의 세력이 우위를 점하게 된다.
이방원에 의해 신진 관료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온건개혁파가 제거됨으로써 정도전 중심의 급진파가 득세하게 된다. 대대로 내려오던 권문세가를 압도한 신진사대부의 승리는 고려의 멸망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다(1392). 이렇게 건국된 조선 역시 자기만 살겠다며 옥새를 가져다 임의로 찍어 나라를 팔았던 친일 매국노들은 멸망의 원흉이었다. 물론 시아버지 대원군과 민비(며느리) 간의 갈등이 촉발한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 그리고 한일병탄(1910)의 계기가 되었으니 이 또한 내부갈등이 가져온 대 비극임에 분명하다. 개미 떼가 뭉치면 사자도 이길 수 있는데 오히려 사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물고 물리는 내부 싸움질만 하였으니 자멸은 필연이었다. 너무도 분하고 괘씸한 역적들이다. 그러면 내홍에 아무런 대책이 없단 말인가?
“나라를 망치는 길이 하나가 아니지만 붕당이 있는 나라는 반드시 멸망합니다. 붕당이 생기면 시비와 현사(賢邪)가 뒤섞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군자는 모두 물러나고 소인이 진출하여 임금은 임금 답게 되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게 되지 못하니, 이러고서도 어떻게 국가를 보유할 수 있겠습니까? 붕당을 세우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함이 없어서 몸을 편안한 곳에 처하게 할 수 있지만 독자적으로 행동하면 백 가지가 모두 제대로 되지 않아서 몸이 그만 병들고 마니, 이것이 바로 계속 붕당을 세우는 까닭입니다. ~(중략)~ 홍범(洪範)에 이르기를 ‘무릇 일반 백성들이 사적으로 붕당을 짓는 일이 없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부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은 오직 임금이 그들을 위해 표준을 세워 주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아 임금이 실로 표준을 세워 주기만 한다면 사적으로 붕당을 짓는 일과 아부하는 마음이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붕당의 환란은 반드시 쇠한 말세에나 있고 융성한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고산 윤선도(1587~1671)가 효종에게 올린 상소 ‘時務八條(시무팔조)’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1652). 상소는 효종이 당파를 막는 현명한 군주이기를 간원하고 있다. 이권을 따라 이합집산하는 패거리는 편 가르기와 내홍을 통하여 국력을 소진하였기에 새로운 세력을 출현하게 하거나 외침을 불렀음은 자명한 결과가 된다. 특히 왕권이 허약하면 더욱 심한 자중지란이 일어났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에 조직안에 도사리고 있는 그놈을 조심해야 한다. 조직이 느슨하면 늘 고개를 내밀며 세를 규합하여 자기 영역을 확충하려 한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며 먹이를 주는 녀석이 주인공 되어 활개 친다. 사욕에 결탁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면서 이끗에 밝아 자중지란의 주범이 된다. 이것이 결국 자신의 파멸은 물론 나라까지도 반드시 멸망케 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가 택하여 나아갈 길은 더욱 분명해진다(能者在職). 물론 이보다 먼저 사리 판단이 출중한 왕이 통치하고 있어야(賢者在位) 함은 너무도 당연한 전제가 된다.

/양 태 규
옛글 21 대표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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