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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칼럼

용서라는 것은? 恕而行之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서 그가 독자에게
묻고 있다
또 ‘밀양’의
신애에게도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05월 24일
ⓒ e-전라매일
“내가 용서해주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당신의 죄를 용서해주었다고요?”
영화 ‘밀양’의 한 대목이다. 아들을 살해한 범인이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믿고 모든 죄를 용서받아서 마음이 편안하다고 고백한다. 이 말을 들은 주인공 신애(배우 전도연)는 충격을 받고 분노하며 절규한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와 아들과 함께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범인은 아들을 납치하여 돈을 요구한다. 기죽지 않으려고 평소 돈이 많은 체하다가, 마침 쪼들림을 당하던 범인(배우 오영진)의 마수에 걸려든 것이다. 그 범인은 다름 아닌 아들이 다니던 그 웅변학원의 원장이었고, 돈을 요구한 범인에게 “실은 가진 돈이 없다. ~(중략)~ 납치된 아들의 목소리만이라도 들려달라?”고 통화하며 애원했지만 아들은 이미 죽은 후였다. 꿈이 깨져버린 신애는 허탈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유괴범을 용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면회를 갔는데, 그로부터 셀프용서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데…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제멋대로 마음의 짐을 털어낸 뻔뻔함에 신애는 충격과 분노 속에 신을 증오하는 모습까지 드러낸다.
피해 유족이 용서하기도 전에 신이 먼저 가해자를 용서한 ‘신의 자비’, 그래서 가해자가 극히 평온함을 얻은 것에 심히 분개한 피해자와의 갈등을 테마로 한 영화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상의 한 얘기다. 통상적으로 용서란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관용(寬容, tolerance)을 일컫는다. 복수 감정은 삶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면서 과거의 집착(고통·증오·분노·원망·상처·저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 그리고 선처 호소 등이 전제되었음은 통상의 관습이다. 그런데도 피해자가 용서를 한다는 것을 실은 매우 어려운 결단 행위다.
특히 피해가 크고 깊거나 오랫동안 계속된 경우 등은 더더욱 어려운 게 용서의 속성이다. 600만 명을 가스실에서 죽인 2차 대전의 나치나 36년간을 식민 통치한 일제를 쉽게 용서하지 못한 것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사람이 죽거나 쫓겨다니며 겪은 갖은 고초와 피눈물의 세월이었음에도, 전혀 반성도 사과도 없이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며 온갖 억장을 유발하는 만행에 분노만이 치솟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피해자의 속은 더욱 새까맣게 타들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먼저 용서할 수만은 없음이 일반적인 법 감정이다. 종종 종교인들은 조건 없이, 내가 먼저, 그리고 즉시, 용서할 것을 주장한다. 마치 베드로에게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하라고 가르친 예수나 이를 몸소 실천한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기도(架上七言)를 인용한다.
또 역사에 존재했던 사실들 즉, 왕의 여자를 희롱한 데서 유래한 고사 절영지회(絶纓之会), 상습적인 탈영병에 대한 웰링턴 제독의 용서, 노예해방전쟁에서 수많은 북군을 살상한 남부군을 사면한 링컨 등도 무조건적 용서론에 힘을 싣는다. 물론 피해자도 어두운 과거를 털고 새 출발 하는 자유를 원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소위 ‘회개’가 전제되지 않은 피해자의 일방적인 싸구려 용서가 용서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라는 문제가 생긴다.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에 피해자의 용서라는 주고받기식 용서 그리고 인과응보론에 익숙한 우리들이다. 2차 대전 말 독일의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유대인 시몬 비젠탈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수용소 내의 간호사를 따라간다. 폭격으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나치 친위대원의 임종을 지켜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는 자신의 악행을 고해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유대인 ‘아무나’가 필요했고, 그날 지목되어 온 ‘아무나’가 비젠탈이었다. 유대인들을 교회당에 몰아넣고 불을 지른 후 총을 난사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유대인에게 고백함으로써 용서를 받고자 했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비젠탈은 고민했고, 확답 없이 그냥 병실을 뛰쳐나왔다.
그 무렵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생존했던 유대인 출신의 작가이자 화학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그 친위대원의 고백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죄를 면책받고자 하는 이기적인 행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용서를 구해 편안한 죽음을 맞고 싶다는 것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 그 후 그는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비젠탈은 이른바 ‘나치 사냥꾼’이 되어 전 세계에 숨어있는 나치 전범 1,100여 명을 붙잡아 법정에 세웠다. 지금도 그가 건립한 ‘비젠탈센터’는 숨어있는 나치를 찾아다니고 있다. 이상은 그가 쓴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의 내용이다. 또 참회가 없음에도 용서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한 마디로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먼저 참회 없는 용서를 감당하는 피해자의 심적 갈등이 선결 되어야 할 문제다. 주고받기에 익숙한 관행을 포기해야 하는 용기와 결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그것이 희생자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기 위한 주체로의 변화라고 ‘조금 불편한 용서’는 말한다. 반성과 보상도 없이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용서해준다는 사실, 그것이 내부에서 일으키는 갈등을 잠재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깊이 동정하며 죄를 완벽하게 잊을 수 있는 것(恕而行之)은 순전히 피해자의 몫이 된다. 무릇 용서는 “가장 신성한 숭리다.”,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영광스런 최고의 승리다.”, “가장 고상한 기쁨이다.” “성스러운 것이다.”, “인류 최고의 업적이다.”라는 등의 격언들이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결과 유엔은 매년 11월 16일을 ‘관용의 날’로 선포하여(1995) 시행 중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성령의 훼방, 거역과 은혜 모욕, 그리고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은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항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대인이 나치를 잊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일제를, 6·25를, 광주학살자를 결코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 역사를 지키는 일이다. 진정한 반성과 사과 등이 재발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라면, 늘 기억하며 대비하는 것은 그런 불행을 막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용서를 강조하는 종교임에도 기독교와 이슬람이, 또 해당 종교인 간에도 반목과 질시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음을 보면 정말 어려운 것이 용서임을 알 수 있다. 친위대원을 용서하지 못한 것을 고민한 비젠탈은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묻는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했겠느냐? ~(중략)~ 모든 죄는 다 용서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서 그가 독자에게 묻고 있다. 또 ‘밀양’의 신애에게도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양태규
옛글 21 대표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0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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