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집사님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4월 08일
찬바람이 불어오고 창밖의 담쟁이 잎이 붉게 물들고 한 잎 두 잎 떨어질 무렵 배 집사님이 병원에 들어오셨다. 마른 체격에 키가 훤칠 하시고 65세이신데 위암이란다. 시골에서 닭을 키우며 성실하게 사시 다 병을 얻어 고생을 많이 하셨다 한다. 가족은 동갑나기 아내 권사 님이 계시고 두 딸이 있는데 회사 다니는 큰딸이 있고 초등학교 선생 님인 둘째딸이 있다. 혼기가 지나고 있지만 둘 다 결혼은 하지 않았 다. 둘째에게 남자친구가 있어 저녁에 아버지 병실을 함께 꼭 들른다. 아내 권사님이 곁에서 병간호를 지극정성으로 하신다. 언제 보아도 웃으시는 얼굴로 소리 없이 간병을 하신다. 거친 음식을 먹을 수가 없 어 과일을 갈아드시게 한다든지 대소변 처리까지 완벽에 가까울 정 도로 세심하게 돌보신다. 배집사님이 병상생활을 하신지가 10년이 넘 는다 한다. 오랜 병상생활에 수술비, 치료비 등 지출에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딸들이 있어 든든하다 한다. 딸들이 직장을 마치고 저녁이면 치킨이며 간식 등 아버지가 드실만 한 음료수 등을 사들고 병실을 찾아온다. 조용했던 병실에 화기가 돌 고 사람이 사는 것 같다. 10시가 되면 가장인 배 집사님이 자녀를 집 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하루 마침 기도를 한다. 예비 사위까지 침상을 중심으로 다섯 명이 둘러 앉아 음성마저 변한 코맹맹이 소리로 기도 하는 정경이 눈물겹다. 잘 들리지 않지만 가만히 들어보니 감사 기도 다.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 아내와 딸, 예비 사위가 있음에 감사, 주 안에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음에 감사, 감사 기도다. 아버지 기도가 마쳐야 딸들은 아버지 얼굴에 볼을 부비고 집으로 돌아간다. 말기암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데에도 팔 벌려 가족들을 끌어 안고 기 도하는 모습이 거룩하다. 배집사님과 그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 께 하시기를 빌어본다. 안타까운 것은 둘째딸의 결혼 날짜다. 지금 형편으로는 제대로 누 울 수도 앉아 있기도 힘이 드는데 아버지가 멀찍이 4월 5일을 결혼 날 로 잡았다 한다. 그리고 딸 결혼식에는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 1월 중순이니 2월 학년말 방학이 시작되는 날쯤 잡아두면 살아서 보실 터인데 하는 생각이 간 절했다. 권사님에게 늦어도 3월 초순을 넘겨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 을 드렸는데 남편의 마지막 결정사항이라시며 어찌할 수 없다 했다. 아닌게 아니라 아버지는 그리 보고 싶다던,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겠다던 결혼식을 보지 못하고 황사가 끼어 뿌연 3월 1일에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상을 치루셨는데 빈소에는 일가친척들 이 적었는지 조문객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쓸쓸했다. 병원에 오셔 큰소리 한 번 내지 아니하고, 간호사나 보호사 선생님 들을 힘들게 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계시다 가셨다. 더 가까이서 귀 를 기울여 들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는 아 쉬움이 남는다. 지금도 배집사님의 코맹맹이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 다. 가장으로 식솔들을 모아 놓고 하늘에 고하는 축복기도 모습이 보 이는 듯 선하다. 권사님의 여생과 두 딸의 삶에 하나님의 가호가 있 기를 빈다.
/김영진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4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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