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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랑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6월 10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병원에서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길에서 할 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409호 환자 췌장 암 송O숙 보호자 분이셨다. 벤치에 홀로 앉아 마른 어깨를 들썩이 며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연신 닦아내고 계신 팔순 할아버지는 아 내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시는 할아버지였다. 옆에 다가가 눈 물이 그치기를 한참동안 기다렸다. 늦게서야 인기척을 아시고 고개 를 들으신다.
이럴 수가, 알고 보니 우리 고향 산 넘어 이웃동네에 사시는 분이신 데 몰랐을 줄이야, 나도 학교에 다닌다고 일찍이 고향을 떠나 살았고, 어르신은 한동안 공무원이셨는데 퇴임하시고 고향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시며 사시고 계신다 한다. 자녀는 2남 3녀를 두셨는데 모두 대학 을 나와 나름 잘 살고 있다 한다. 공무원으로, 회사 간부로 아들들이 있고 교장 선생님인 딸도 있다 하신다. 시골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 며 부부가 오순도순 잘 살아왔는데 1년 전에 아내가 췌장암으로 판 명이 되어 서울 병원에서 치료를 하다 이제 호스피스병원으로 오시 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제 아내의 손을 놓아줘야 할 때가 온 것이라 말씀하신 다. 아내를 자녀들과 살려보려고 온갖 방법 수단을 다 해 보았는데 지금 생각을 해보니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햇살이 잘 드는 집에서 문 활짝 열어놓고 맑은 공기 마시며 제철 과일 사먹고 편 안하게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터인데 병원으로 전전하며 수술한다, 치료한다 한 것이 환자에게 고통만 주고 힘들게 한 것이 아닌가 후회 막급하다는 것이다. 병원에 있을 때 아내 역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그 렇게 졸랐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얼굴에 주름살은 많으셨지만 유순하시고 선한 모습이 셨다. 아내 옆에서 아내와 눈 맞춤하며 웃으시는 모습은 모두들 일품 이라 하였다. 마음 쓰심이 착하고 천성이 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나 부지런하시고, 깔끔하시고, 자상하신지 기저귀 처리 등 보조활동 인력 선생님들이 하실 일들도 미리 찾아 하시는 것이었다. 아내와 둘 이서 살아왔는데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아갈 길이 막연하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아내를 따라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 들과 딸들이 있지만 자식 집에 얹혀 신세질 처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렇다고 아직은 이렇게 멀쩡한데 요양원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시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해 질녘 벤치에 앉아 그토록 서럽게 우셨다 한다. 말씀들이 하나하나 공 감이 되었다. 오랜 부부의 정을 끊을 수 없다는 어르신의 말씀이 애 처롭기만 하다.
내가 하루 쉬고 이브닝으로 근무하러 들어오니 송 할머니가 보이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간호사실에 물으니 오늘 새벽 1시에 임종하셔 고 향 장례식장으로 가셨다는 것이었다. 가시는 길에 인사도 제대로 챙 기지 못한 거 같아 마음이 걸렸다. 3일이 지난 후에 따님 두 분이 병 원에 찾아 오셨다. 어머니를 고향에 잘 모셨다는 것과 그간 잘 돌보 아 주셨다는 감사로 떡과 음료수를 가져오셨다. 무엇보다 아버지 소 식이 궁금하여 어떻게 하기로 하였느냐고 물었다. 아버지께서 고향 집에 계시는 것을 원하셔 그리하도록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5남 매 자녀들이 반찬 등을 챙겨 주말에 돌아가며 방문하여 아버지와 함 께하기로 하였다 하여 안심이 되었다.
여름, 가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인 11월, 담당 병실에 출 근을 하니 85세 폐암으로 이O준님이 들어와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할 아버지는 빙긋이 웃으시면서 “집에서 6개월간 잘 쉬었다 왔네” 하시 며 손을 내미셨다. 반갑기도 하고 병원에는 오시지 않아야 하는데 하 며 어정쩡하게 손을 잡았다. 오랫동안 아내의 병간호를 하셨기에 병 원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아들과 딸들이 근처에 여럿이 살아 자주 찾아와 간식이며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꿈에 아내가 자주 찾아와 놀다 가신다고 행복해 하더니 이듬해 1월 중순 에 평온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다. 날씨는 포근한 가운데 창 밖에는 희끗희끗 눈이 날리고 있었다.
부부 금슬이 좋으셨던 분들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뒤따르고 싶다더니 건강하셨던 분이 6개월 뒤에 병원에 오셔 2개월 만에 가셨다. 어머니 아버지를 연거푸 잃은 자녀 들은 상실감에 마음이 많이 아팠겠지만 두 분에게는 아름다운 마무 리임에는 분명하다. 잘 가세요. 땅에서는 알 수 없지만 높은 곳 그 곳 에서 아웅다웅 다투지 마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김영진
시인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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