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2-10)] 소음과 소통 사이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6월 12일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당하는 기분은 떫을 수밖에 없다. 특히 영화관에서의 광고는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본 영화 시작 전 그 지역의 구멍가게 광고까지도 봐주어야 하는 현실이 힘들 때 가 있다. 김수영 시인 역시 〈무허가 이발소〉라는 산문을 통해 당시 버 스나 택시 등 이동의 수단에서 원치 않는 소음을 경험하게 되는 데 “좌석버스나 코로나 택시에서까지도 가요 팬의 운전사를 만 나게 되면 사색은 고사하고 그날 하루의 재수가 염려될 만큼 신 경고문과 세뇌교육이 사회화되고 있는 세상에서는 신경을 푼다는 것도 하나의 위법이요 범죄라는 감이 든다.”라며 원하지 않 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 은 것 같다. 여행 중 운전기사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억지로 들 으며 가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칠십 년대 영화관에서 빠트리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반공과 체제 유지에 필요한 세뇌 교육이었다. 이름하 여 ‘대한 늬우스’다. 광고는 지금보다 심했으니 장장 삼사십 분 이상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듣고 봐야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명 절 때나 가능한 영화관 출입이었기에 하얀빛을 투과한 화면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필름이 끊어져 암흑 속에 있어도 항의나 반 표를 제의하지 않았던 그 시절, 서구의 문화를 따라 들어온 이 발소도 튀는 직업군의 하나였다. 하이칼라나 올백으로 넘긴 머릿결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유 행일 때, 이발소에서 풍기는 포마드 냄새는 동백기름을 밀어낸 새로운 물건이었다. 반들반들한 머릿결이 거리를 활보할 때면 진한 냄새가 시선을 붙들었다. 그때 그 시절, 신발이 해지고 옷 은 낡았어도 머리에 자르르한 포마드 기름을 바르고 나서는 일 은 자존감 같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발소는 미장원만큼이나 이야깃거리가 쌓이곤 했다. 그러나 미장원과는 달리 이발소는 음담패설과 해학적인 이 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 야릇한 이야기는 너나없이 순서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상쇄시켰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입담 을 못 들은 척 딴전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발소에서도 라 디오의 소음은 온종일 이어졌다. 김수영 시인은 이발소 소음 또한 무례함으로 지적하지만, 버 스와 택시의 소음보다는 측은지심의 눈으로 본다. “저 다 해어 진 신에, 저 더러운 옷에 저 반짝이는 머리가 어떻게 어울린다고 저 불필요한 치장을 하나 (중략) 불쌍한 저 아이가 저렇게 정중한 우대를 받고 사람대우를 받는 것은 무허가 이발소밖에 있으랴.” 에서처럼 이발소 의자를 뒤로 한껏 젖히고 면도 서비스를 받고 마무리도 향기로운 포마드로 마감하는 것은 당사자에겐 대단 한 자존감이며 대우였으리라. 한편 김수영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직공들의 반지르르한 머 릿결에서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알게 되고 “겸손한 반성”에까지도 이르게 된다. 결국 나도 누군가에게는 무허가 이 발소일 수 있으며, 어쩌면 우리는 소음이 소통되는 무허가 이발 소 하나씩은 품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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