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7-21 01:40:46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뉴스 > 칼럼

은둔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08월 05일
망초 한 촉, 어디를 떠돌다 왔는지 측백나무 울타리에 터를 잡았다. 초라한 행색이 볼품없어 뽑으려다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그냥 두었다.
햇살에 잎맥 짙어지고 정강이 툭툭 건드리는 바람에 점점 실 해져 가는 유월. 이파리가 바람의 중심을 잡는 동안 줄기는 땅 속 시간을 길어 올려 허공에 작은 꽃을 수놓는다. 배냇짓처럼 쫑긋거리는 꽃잎 사이로 드나드는 햇살에 점점 또렷해지는 망 초. 울타리의 텃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볕을 불러 뜨겁게 산다.
가끔 찾아오는 박새와 속살거리고 우리 집 처마에 매달린 풍경소리를 불러 허허로이 살아가는 망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난세의 기인 경허선사가 생각난다. 그는 깨달은 사람이었으나 머리를 기르고 이름까지 바꾼 채 어린이를 가르치다가 입적하 였다. 그의 제자 수월도 깨달은 후 승가에서 불목하니로 살았으니, 깨달은 자의 진정한 삶이란 저 망초처럼 낯선 곳에 숨어들어 겸허를 이루며 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얼마 전, 일 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지내던 선배를 만났다. 호형호제로 살아온 시간이 수년인데 언제부턴가 금이 간 관계는 개선될 여지 없이 틈만 더 벌어져 갔다. 닫힌 마음은 좀처럼 열 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시시포스처럼 돌덩이를 매달고 살았다.
고통은 같은 질량이라도 사람마다 체감에 따라 다른 것처럼 내가 느끼는 사소한 일이 상대에겐 씻지 못할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더 무서운 것은 내가 평생 힘들게 살아야 하는 멍에를 얹 어 줄 수도 있으니 화해는 그러한 고리를 끊는 가장 중요한 행 위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았기에 다행한 일이었다.
겸허하다는 것은 있고 없음이 일여한 무無의 존재에 가까운 사람일 것인데, 무無란 소금처럼 자신을 희생해야 맛을 낼 수 있다. 비우매 은둔을 꿈꾸는 망초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니, 망초를 통한 깨달음이 결국 그 선배에게 전화하게 한 것 이다. 머쓱한 화해는 지난 시간에 대해 후회하게도 했지만 사람 귀한 줄을 체득한 것이기에 서로를 다독였다.
낯선 곳, 낮은 곳에 임한 망초. 어쩌면 불교의 마지막 수행은 법상에서 절을 받고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망초처럼 이웃과 어 울리는 것일 게다. 볼품없으나 낮은 만큼 넓은 하늘을 품을 수 있고 아래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망초는 틈과 그늘을 밝히는 경허선사 같은 소박한 꽃이지 싶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좌우명이 하나 있었다. “잘 숨는 사람만이 잘 사는 사람이다.”라는 고대 로마시인 오비디우스의 말인데, 데카 르트 자신도 고국을 떠나 수년을 숨어 살았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은 권력이 지배하는 물질세계 위에 정신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상은 은밀한 곳에서 활동하듯 사람도 삶에 있어 나이가 들 수록 저 망초처럼 겸허의 은둔을 잘해야 할 것 같다. 때론 햇볕이 가리고 측백나무 가지에 밀려도 낭창낭창 사는 망초. 오늘, 그가 나의 은둔을 묻는다.
/배귀선 (시인)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08월 05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부안군의회, 2025년 상반기 의정활동 마무리  
“전북, 대한민국 제조AI 혁신의 심장으로”  
민선8기 3주년 전춘성 진안군수, “지속가능 생태치유도시 실현, 군민이 체감하는 변화 본  
시민과 함께 일군 빛나는 3년, 정읍의 담대한 변화 이끌다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군-정치권 노력끝에 노을대교 2030년 개통 청신  
지해춘 군산시의원의 생활밀착 의정 “발로 뛰어야 도시가 보인다”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심덕섭호 3년, 변화와 성장으로 미래 열었다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심덕섭호 3년, 변화와 성장으로 미래 열었다  
포토뉴스
‘중학생 소설가’ 백은별, 1억 원 기부
청소년 작가로 이름을 알린 백은별(16) 작가가 1억 원을 기부하며 고액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의 최연소 서 
전주시립교향악단, 젊은 음악 인재들과 협연 무대 마련
전주시립교향악단이 미래 음악계를 이끌어갈 청소년 연주자들과 함께 특별한 무대를 선보인다.전주시립교향악단은 오는 24일 오후 7시 30분, 한국 
임실 아쿠아 페스티벌, 초대형 돔·에어컨 쉼터‘첫선’
임실군이 오는 26일부터 열리는 아쿠아 페스티벌을 앞두고, 올해부터는 햇빛을 차단하는 초대형 돔과 에어컨이 완비된 휴게 쉼터를 새롭게 설치,  
˝세계 속 익산 백제를 만나다˝…유네스코 등재 10주년
익산시가 세계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백제유산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익산시는 올해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독자와 함께 진화하는 언론 전라매일신문
전라매일이 언론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보다 심화시키기 위한 독자 참여 구조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지난 14일, 전라매일 본사에서 열린 제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편집·발행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