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7-09 16:18:57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뉴스 > 칼럼

은둔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08월 05일
망초 한 촉, 어디를 떠돌다 왔는지 측백나무 울타리에 터를 잡았다. 초라한 행색이 볼품없어 뽑으려다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그냥 두었다.
햇살에 잎맥 짙어지고 정강이 툭툭 건드리는 바람에 점점 실 해져 가는 유월. 이파리가 바람의 중심을 잡는 동안 줄기는 땅 속 시간을 길어 올려 허공에 작은 꽃을 수놓는다. 배냇짓처럼 쫑긋거리는 꽃잎 사이로 드나드는 햇살에 점점 또렷해지는 망 초. 울타리의 텃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볕을 불러 뜨겁게 산다.
가끔 찾아오는 박새와 속살거리고 우리 집 처마에 매달린 풍경소리를 불러 허허로이 살아가는 망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난세의 기인 경허선사가 생각난다. 그는 깨달은 사람이었으나 머리를 기르고 이름까지 바꾼 채 어린이를 가르치다가 입적하 였다. 그의 제자 수월도 깨달은 후 승가에서 불목하니로 살았으니, 깨달은 자의 진정한 삶이란 저 망초처럼 낯선 곳에 숨어들어 겸허를 이루며 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얼마 전, 일 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지내던 선배를 만났다. 호형호제로 살아온 시간이 수년인데 언제부턴가 금이 간 관계는 개선될 여지 없이 틈만 더 벌어져 갔다. 닫힌 마음은 좀처럼 열 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시시포스처럼 돌덩이를 매달고 살았다.
고통은 같은 질량이라도 사람마다 체감에 따라 다른 것처럼 내가 느끼는 사소한 일이 상대에겐 씻지 못할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더 무서운 것은 내가 평생 힘들게 살아야 하는 멍에를 얹 어 줄 수도 있으니 화해는 그러한 고리를 끊는 가장 중요한 행 위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았기에 다행한 일이었다.
겸허하다는 것은 있고 없음이 일여한 무無의 존재에 가까운 사람일 것인데, 무無란 소금처럼 자신을 희생해야 맛을 낼 수 있다. 비우매 은둔을 꿈꾸는 망초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니, 망초를 통한 깨달음이 결국 그 선배에게 전화하게 한 것 이다. 머쓱한 화해는 지난 시간에 대해 후회하게도 했지만 사람 귀한 줄을 체득한 것이기에 서로를 다독였다.
낯선 곳, 낮은 곳에 임한 망초. 어쩌면 불교의 마지막 수행은 법상에서 절을 받고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망초처럼 이웃과 어 울리는 것일 게다. 볼품없으나 낮은 만큼 넓은 하늘을 품을 수 있고 아래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망초는 틈과 그늘을 밝히는 경허선사 같은 소박한 꽃이지 싶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좌우명이 하나 있었다. “잘 숨는 사람만이 잘 사는 사람이다.”라는 고대 로마시인 오비디우스의 말인데, 데카 르트 자신도 고국을 떠나 수년을 숨어 살았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은 권력이 지배하는 물질세계 위에 정신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상은 은밀한 곳에서 활동하듯 사람도 삶에 있어 나이가 들 수록 저 망초처럼 겸허의 은둔을 잘해야 할 것 같다. 때론 햇볕이 가리고 측백나무 가지에 밀려도 낭창낭창 사는 망초. 오늘, 그가 나의 은둔을 묻는다.
/배귀선 (시인)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08월 05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심덕섭호 3년, 변화와 성장으로 미래 열었다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심덕섭호 3년, 변화와 성장으로 미래 열었다  
“전주의 결의, 만주의 승전” 봉오동 전투 105주년 전북서 되살아난 항일의 불꽃  
전주의 결의, 만주의 승전” 봉오동 전투 105주년 전북서 되살아난 항일의 불꽃  
전북 대표 국립전주박물관, 새로운 35년을 열다  
“국정 혼란 속 도민 안정 · 민생 회복 의정활동 총력”  
임실교육지원청, 작지만 강한 교육혁신 중심으로  
시민 모두 안전하고 편리한 선진 교통 도시로 도약  
포토뉴스
전주문화재단, 한복문화 확산 거점으로 ‘우뚝’
전통문화도시 전주가 한복문화의 중심지로서 입지를 다시 한 번 굳혔다.전주시와 (재)전주문화재단(대표이사 최락기)이 운영하는 ‘전주한복문화창작소 
전주문화재단,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 개최
전주문화재단이 전통 국악과 인공지능 작곡 기술의 융합을 시도하는 두 번째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을 개최한다. 공모 주제는 **‘ 
전북도립국악원,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선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무용단이 한국 예술단체로는 처음으로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 국립오페라극장에 진출한다. 오는 7월 27일 국악원의 대표 창 
순창군, 제4회 강천산 전국 가요제 참가자 모집… 8월 29일까지 접수
제4회 강천산 전국 가요제가 오는 9월 27일 토요일 순창군 강천산 군립공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가요제는 순창군이 
완주 도서관에서 만나는 여름휴가, 인문학 강의 개막
완주군과 전북대학교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2025 인문학 지식나눔 강좌’가 오는 8일 오전 10시, 삼례도서관에서 첫 강의를 시작으로 본격 운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편집·발행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