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에 촛불을 켤 용기(2)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09월 29일
소설 ‘대지’가 발표되자 미국에서는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루쉰은 가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리얼리즘 묘사 등 제국주의 관점의 백인 우월주의라 비판했다. 루쉰의 평을 듣지 않고도 재미교포 강용흘姜龍訖Younghill Kang은 부자들의 미성년자 축첩행위 등 중국인 품성을 도덕적으로 비하했다고 한때 부정적이기도 했다. 선교사들도 비판에 동조했는데 펄 벅은 내가 가공한 게 아니고 직접 듣고않았을까. 덕분에 ‘대지’는 펄의 본 청나라 왕조 말기의 시대상 자체라고 응답했다. 그녀는 사실 의화단 폭동을 목격했고 국민당의 난징 공략 때는 일본 나가사키로 피신하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여정을 거쳤다. 험난한 역사를 몸소 체험한 경험자였기에 허구지만 탄탄하고 당당한 플롯으로 작품을 완성해 내지 나이 마흔여섯 살 1938년 12월에 노벨문학상 수상을 했다. 작가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서 먼 그리움을 회상하듯 소설의 스토리라인을 다시 추슬러 보았다. 소설의 발단은 어느 봄 왕룽의 혼인날에서 비롯한다. 주인공은 콜록거리는 기침으로 하루를 여는 아버지와 살았는데 스무 살이 되어서야 읍내 지주의 하녀인 오란과 혼인한다. 겨우 친인척 몇 사람과 옆집 사람을 불러 저녁 식사를 나눈 정도였지만, 아들 둘을 낳을 때까지 부부는 억척스럽게 땅을 일구고 가꾼다. 이들은 고집이 세고 우직했지만, 대지를 생명처럼 여기며 정직하게 살았다. 하지만 셋째 딸을 낳을 무렵 불행의 전조가 나타난다. 두 해 동안이나 무지막지한 가뭄이 들어 아끼던 소까지 잡아먹었는가 하면 넷째 딸을 낳은 후 오란은 어린것의 목을 졸라 죽이기까지 했다. 굶주림으로 더는 견딜 수 없자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일가는 살길을 찾아 남쪽 지방으로 향했다. 객지에 다다른 그들의 삶은 기구했다. 왕룽은 인력거를 끌었고 다른 가족들은 구걸로 연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혁명이 일어났고 그 무리에 휩싸인 왕룽과 오란은 부잣집을 터는 데 동참했다. 금은보화를 잔뜩 얻어 귀향하는데 다시 땅을 확보해 지주가 되고 오란은 남녀 쌍둥이까지 출산했다. 그렇게 생활이 윤택해지고 삶이 안정되자 삼촌네 가족이 밀고 들어와 기숙했다. 왕룽은 렌화라는 여인을 첩으로 들였다. 큰아들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는가 하면 메뚜기 떼도 출몰했다. 설상가상으로 힘든 역경을 견디며 살아온 오란은 병을 얻어 죽었다. 끊임없는 풍파 속에서도 왕룽의 재산은 늘어났다. 아내의 주인이었던 황 씨네 저택으로 옮겨 살게 되었고 근방의 최고 지주가 되었다. 큰아들은 원하던 서양 학문을 수확했고 둘째는 곡물 상인이 되었다. 손주도 스무 명 남짓이나 태어났다. 왕룽은 모든 게 땅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신식 문물을 접한 아들들의 속셈은 달랐다. 아버지 사후에 땅을 팔아 재산을 나눠 가질 것만을 고대했다. 자식들의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왕룽은 목숨처럼 여기던 대지의 품에 안겼다. 소설은 1930년대 중국 여성의 지위와 삶도 엿볼 수 있는데 그 한 예로 왕룽은 아내가 못생겼거나 전족하지 않았음을 보고 낙심한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전족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겼다. 삶에서 발생하는 온갖 시련과 사건 대부분을 여성의 모성애나 희생으로 감내했는데 너무 가혹한 처지였을 것 같다. 왕룽은 부자가 되면서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라는 속담처럼 호의호식에 축첩까지 하여 오란을 힘들게 했다. 아내가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게 되자 뒤늦게 땅을 다 팔아서라도 살리고 싶다 했다. 그제야 아내를 향해 “진정한 대지의 주인은 당신”이었노라고 중얼거렸다. 갖은 고난과 역경, 시대의 변화를 거치면서도 그는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땅을 갖고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라며 철통 같은 철학과 가치관을 고수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당면한 손자들은 할아버지를 “머리가 낡은 노인”이라고 경멸했다. “할아버지 혁명이 일어나고부터는 아무도 사서 따위는 공부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격한 시대 차를 드러냈다. 주인공들의 삶 속에 펄은 자신의 의지를 투영하기도 했는데 장애가 있는 자기의 딸을 오란의 첫딸로 대입했다는 의견도 있다. 주인공들의 성격 묘사와 리얼한 생활 모습에서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펄은 이방인 선교사였지만 누구보다 중국을 제대로 꿰뚫어 본 휴머니스트였다. 중국의 전통적 가치 체계와 근대화 사이의 갈등이 아들과 손자 세대로 갈수록 심화하기도 했고 삼촌과 그 일족은 안티테제로 얽히고설키는데 펄은 이런 갈등과 화해를 조화롭게 이끌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펄 벅이 “한 촛불을 켜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남긴 건 그 시대 문인들의 각성을 위한 일성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누구라도 글을 쓰고자 하는 이가 용기 낼 수 있는 든든한 어록임도 새삼 느껴보며 그녀의 소설 ‘대지’’를 가만히 품어보았다.
/김숙(전)중등학교교장)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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