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집안에서도 기둥이나 문 모서리에 부딪치는 수가 있다. 민감한 피부는 곧바로 멍이 든다. 깨끗했던 살갗은 금세 새까맣게 멍이 들어 보기에 흉하다. 시간이 지나면 원상회복이 되지만 그동안에는 이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긴소매 옷을 입거나 장갑을 끼거나 하는 방법을 써서라도 감추려고 한다. 정신적 피해다. 자기 잘못으로 저질러진 일이니 남을 원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제도적으로 어떤 조직에 의해서 강제적인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억울한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현상 중에 탄핵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다. 전쟁이 났을 경우에는 반드시 필요한 국가 비상조치이지만 그 외의 계엄령은 4.19나 5.16 그리고 5.18의 경우 이외에는 별로 없다. 그만큼 계엄은 조심스러운 비상 선포다. 느닷없이 선포된 비상계엄은 국회 해제 결의로 6시간 만의 해프닝이 되어 지금 내란의 멍에를 안고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을 기다린다. 국회 소추에 대한 기각이냐 인용이냐를 두고 나라 안팎은 찬반양론으로 갈려 시끄럽다.
이로 인하여 쿠데타가 아닌 나라에서는 아마 처음으로 현역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되는 새로운 기록이 생겼지만 국론은 갈갈이 찢겨 국가의 미래가 걱정이다. 이미 변론이 종료되어 피소추인 대통령은 비장한 최후진술까지 마쳤다. 아직 선고 일자가 확정되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처지지만 경찰은 초비상 사태다. 그동안 보아온 찬반 집회는 여야가 총동원되어 국민을 선동하고 있어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나든 간에 대군중의 소요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무려 2만 명의 경찰이 헌재를 둘러싸고 그 지역 일대를 완전봉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탄핵은 대통령 뿐이 아니다. 고위 공직자 국회 탄핵이 29건이라는 보도다. 우리나라 제도는 국회에서 탄핵이 결의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 시간부터 업무 권한이 박탈된다. 헌재에서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집에서 쉬어야 한다. 직책은 유지하되 업무가 중단되었으니 의학적으로 생명은 붙어 있어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환자와 같다. 식물인간이다. 이들의 죄는 모두 직책 수행에서 잘못했다는 것이겠지만 지금까지 헌재에서 국회 소추를 받아들여 파면된 경우는 한 사람도 없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하루 만에 탄핵되어 업무가 중단되었지만 헌재에서 살아났다.
감사원장과 중앙지검장 등 탄핵되었던 검사들도 모두 헌재에서 기각되어 업무에 복귀했다. 이들이 업무에서 배제된 지 98일 만이라고 하니 3~4개월을 허비한 꼴이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헌재에서 기각되어도 국회는 무풍지대다. 국회가 잘못을 저질러도 헌법에서 국회와 법원 그리고 헌재는 탄핵하지 못한다고 못 박혀 있어서다. 고위 공직자의 큰 잘못은 탄핵을 받아도 싸다. 그러나 그들이 사실 별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탄핵되어 업무중단이 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상처를 입는 일이 된다.
한마디로 국력을 낭비하는 일이다. 형법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다. 확정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대원칙이다. 법원에서도 이를 준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고위공직자의 탄핵 권한이 하원에 있다. 하원에서 탄핵이 결의되면 그의 업무가 중단되는가? 그렇지 않다. 헌법재판소를 두지 않고 잇는 미국은 상원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상원에서 하원의 소추를 인용하면 파면. 기각하면 원대복귀다. 업무 공백이 없다. 우리나라도 그래야만 된다. 헌재 결정 때까지 변호사까지 동원하여 개인적인 부담을 안아야 하는 한국의 탄핵 업무중단은 국력의 낭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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