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역세권이 나르샤 (2)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3월 27일
김숙
전)중등교장
명멸하는 불빛의 도회 야경은 별이 쏟아져 내린 별 밭이 된다. 이름하여 뷰세권이다. 이런 곳은 베토벤의 「월광」이나 드뷔시의 「달빛」에 실려 호수를 감상할 수도 있겠다. 어느 곳에선가는 탁 트인 시야로 소실점을 향해 유유히 흘러가는 강 풍경도 들어온다. 수풀 우거진 공원을 느긋하게 조망할 수도 있다. 바닷가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거나 윈드서핑을 하는 모습이 내다보이기도 한다. 그뿐이랴.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 인접한 지역을 백세권, 몰세권이라 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는 학세권이나 도세권도 중요하다. 학세권은 학교나 학원을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의 장소이다. 교과서를 보자기에 싼 후 괴나리봇짐처럼 짊어지고 걸어서 등하교했던 시절, 이제 그런 이야기는 세상에 없다. 요즘은 자녀를 승용차로 모시다 못해 학세권에 살면서 양육하고자 한다. 학교나 학원 근처에 도서관까지 연계된다니 이야말로 트리플 세권이요, 맹자 어머니가 부활한다면 이런 동네에서 다시 살고 싶겠다. 또 병(의)세권도 있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한 곳으로 부상하고 있다. 숲(Park)세권과 수세권, 락樂세권도 눈에 띄었다. 숲이나 공원으로 둘러싸여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마을인데 뷰세권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수세권은 강이나, 호수, 하천 등이 가까이 있어 물멍도 할 수 있고 산책도 가능한 동네이다. 락세권은 극장이나 공연장 등의 문화시설이 가까이 있어 여가생활이나 취미생활을 즐기기에 맞춤한 주거지를 말한다. 또 다른 세권은 주세권으로 퇴근길에 술 한잔할 수 있는 주점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이 주택지로 괜찮을까? 잠깐 의아했지만 주酒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무슨 상관이겠는가.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든, 말든 집 근처 목로주점의 로맨틱함이라니. 편안한 마음으로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눈꺼풀이 내려앉아도 무방하고, 음주운전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올All(多) 세권도 있었다. 옛사람들은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을 이상향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런 곳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요즘은 역세권, 슬세권, 숲세권 등 여러 세권을 합쳐서 산 좋고 물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을 다 갖춰서 조성한단다. 이색적인 욕세권도 눈에 띄었다. 한때 사회적 이슈가 되어 비판 당했거나 욕을 먹었던 지역을 가리켰다. 한참 동안 세상에 하고많은 세권의 파랑波浪을 넘나들다가 울렁거리는 멀미나 가라앉히려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 어느 주변에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내가 속할 그럴싸한 세권은 없을까 골똘히 탐색해 보았으나 묘수는 없었다. 돈도 되지 않지만 글 쓰는 일에나마 참여하고 있으니 이왕이면 글세권에 산다고 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글세권도 이미 누군가가 점령했다. 글로시에glossier라는 미국의 뷰티 브랜드가 있었다. 그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매장이 있는 부근을 글세권이라고 했다. 미국 또는 영국 런던에서나 가능할 터여서 애저녁에 포기하였다. 돌고 돌아 어느 블로거가 올린 글을 보았다. 그이는 촌세권, 산세권, 동세권에 산다고 하였다. 산과 인접한 촌에서 애완동물들과 행복하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자신이 속한 곳에서 만족하는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서울과 한참 떨어진 시골에 칩거하고 있으니 골세권에 산다고나 말해 볼까도 했다가 취소하였다. 골세권은 골프장과 역세권을 끼고 있는 지역이란다. 결국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만 실감하였다. 그저 역세권의 위력에 놀라 날아오르다가 스마트폰 뉘누리 밖으로 튕기고 말았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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