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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닌 몸으로 공부한 시민운동가 ‘박수천씨’


박찬복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19년 11월 28일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머리로 하는 공부보다 몸으로 하는 공부가 훨씬 더 진실 되고 감동적이다. 역사상 여러 성현들도 그랬다.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전태일 열사 또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공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전태일 열사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이 땅을 떠났음에도, 그 어떤 학자도 갖기 어려운 지혜를 가졌다. 오랫동안 경기도 구리시에서 활동한 시민운동가 박수천 씨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공부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편집자 주



ⓒ e-전라매일

●정읍 신태인 출신
박수천 씨는 1954년 정읍시 신태인에서 출생했다.
신태인은 호남선이 지나는 정읍역과 김제역 중간에 위치한다.
가까이엔 동학혁명의 발생 원인이 된 탐관오리 조병갑이 물세를 받기 위해 설치했다는 만석보가 있다.
그리고 전봉준 생가도 머지 않은 곳에 있다.
동학혁명의 땅에서 태어난 박수천 씨의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다.
박수천 씨가 어릴 때, 집안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궁핍하지도 않았다.
널따란 기와집이 있고, 집 앞엔 약 5백여 평의 텃밭도 있었다.
따로 10여 마지기 논도 있어 남의 집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살았다.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장사를 했다.
딱히 대대로 물려받은 가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연탄이나 간장 등을 받아다 도·소매를 했다.
그런데 박수천 씨가 열 살이 되던 해부터 집안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전 재산을 담보로 친척 빚보증을 섰던 것이다. 그 통에 집안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실의에 빠졌고, 박수천 씨가 수업료를 못 내 중학교 졸업식 3일 전에 제적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후, 박수천 씨는 가족들을 따라 고향 신태인을 떠났다.


ⓒ e-전라매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바꾼 인생
1970년 11월 13일.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박수천 씨는 여느 날처럼 중구 방산시장에 물건을 사러 갔다.
그런데 시장의 분위기가 다른 날과 매우 달랐다.
여기저기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박수천 씨는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날 한 청년이 온몸에 불을 붙이고 격한 소리로 외치며 분신했다.
그는 불길에 휩싸인 채 격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외치다 쓰러졌다.
다들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 청년은 결국 쓰러졌고 시장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청년의 몸에 붙은 불을 껐다.
박수천 씨는 나중에 알았다.
그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이었고, 그의 나이는 박수천 씨와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20대 초반이었다는 사실을.
박수천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동운동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었는데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그의 의식은 크게 달라졌다.
박수천 씨의 삶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박수천 씨를 포함한 이 땅의 노동자들 대부분은 일요일에도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에 위배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그 권리를 찾고 지켜야 된다는 점도 깨닫게 해주었다.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당시 서울대학교가 있던 동숭동과 청계천 지역에서는 대학생들의 집회가 자주 열렸다.
그런 시대 상황 속에서 청계천 일대엔 야학이 많이 생겼다.
학력이 짧은 노동자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적이 없는 박수천 씨도 이 야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고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였지만 가난 때문에 배움을 중도에서 포기한 터라 자연스럽게 그의 발길은 야학으로 향했다.
당시 박수천 씨는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하철 공사장에서 철야도 했지만 박수천 씨의 학구열을 막지 못했다.
박수천 씨가 재미있게 다녔던 야학은 박형규 목사가 운영하던 제일교회 야학이었다.
서울시 중구 오장동에 있던 제일교회가 개설한 야학은 노동야학 성격이 강했다.
그곳에서는 노동법도 가르쳤다. 박수천 씨를 포함한 근로자들은 이 노동법 강의도 즐겨 들었다.
박수천 씨는 제일교회의 야학만 다닌 것이 아니다. 두어 군데의 야학을 더 다녔다.
야학 수업의 가장 큰 매력은 토론식 수업을 통해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펼쳐지는 야학 수업은 그때까지 박수천 씨가 받아 온 학교 수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교사는 말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학교 수업과 달리 야학은 교사와 학생이 비교적 평등한 가운데 수업이 이뤄졌다.
야학 교사는 학교 교사처럼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고 인품 그 자체로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런 야학을 통해 박수천 씨의 의식은 크게 바뀌었다.


ⓒ e-전라매일

● 구리시 시민운동엔 그가 있었다

야학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뜨면서 박수천 씨는 노동 운동가가 되었다.
택시기사들의 착취수단이었던 만근수당 철폐에 앞장섰고, 택시노조 1,400개를 조직해 전국택시노조연맹 창립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보기관과 어용노조의 방해로 실패했다.
그 후 박수천 씨는 구리지역에서 재야단체와 시민단체를 태동시켰다.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원진 직업병 투쟁, 시내버스 구간요금 철폐, 동서울터미널(강변역)노선 신설, 택지개발에 따른 세입자 권리 보호, 특고압선 이설 등 구리시의 굵직굵직한 시민 투쟁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 e-전라매일

●구리 인창고 야구부 후원회장 역임

구리시 인창동엔 고등학교가 있다.
인창고등학교다.
이 학교는 야구로 유명하다.
인창고 야구부는 2000년 3월 창단됐다.
구리시의 자랑인 인창고 야구부는 창단 이후, 유명 야구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김진욱 감독. 그는 2000년 인창고 야구부가 창단할 때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듬해 인창고 야구부엔 윤석민 선수가 들어 왔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은 프로 세계에서도 이어졌다.
윤석민 선수는 2004년 두산에 입단했고, 김진욱 감독은 2007년 투수코치 역할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김진욱 감독과 윤석민 선수 등 유명 야구인들을 다수 배출한 인창고 야구부엔 후원회가 있다. 박수천 씨는 오랫동안 인창고 야구부 후원회장을 맡았다.
중고 에어버스를 사서 야구부에 기증한 적도 있다.


박찬복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19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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