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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기획|특집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요리연구가 이낙근

40여 년 지켜온 장인정신으로 현대인 입맛 사로잡아
박찬복 기자 / 입력 : 2021년 07월 15일



■벽골제 인근 마을에서 1959년 출생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카페. 본점은 서울시 송파구 중대로 316, 오금동에 있다. 오금동 외 서울 시내에 지점도 있다.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카페 이낙근 대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요리 연구가다. 특히 제과분야에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권위자다.
1959년생인 이 대표의 고향은 김제시 부량면이다. 김제시 남쪽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정읍시 감곡면, 남쪽으로 정읍시 신태인읍, 남서쪽으로 동진강을 사이에 두고 부안군 백산면, 북쪽으로 김제시 죽산면과 이웃한다.
부량면엔 벽골제가 있다. 백제시대 저수지다. 고대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저수지로는 최대 규모다. 벽골제 유적은 부량면 포교리와 월승리에 남아 있다. 그 제방의 길이는 일직선으로 약 3㎞. 
이대표는 어릴 적 고향마을을 이렇게 회고한다. “저희 고향마을은 지평선의 땅 평야지대로, 밭도 없고, 산도 없고, 대부분 논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경지정리가 된 땅입니다. 제가 태어난 동네는 지평선축제 현장인 벽골제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 옛날 ‘통일벼’라는 벼도 우리 동네 논에서 시범 재배를 해서 전국으로 유통됐습니다. 부모님은 농부였는데, 저는 5남1녀 중 셋째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쌀농사를 주로 지었지만 쌀밥은 거의 못먹었습니다. 저희 집의 경우, 아버지와 막둥이 동생만 쌀밥을 먹었습니다.”
새마을운동과 좀도리쌀도 기억하는 이 대표의 유년기는 그렇게 풍족한 시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제과업을 천직으로
1959년생인 이낙근 대표는 일곱 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958년생들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1974년 2월, 중학교를 졸업한 이 대표는 서울로 상경했다. ‘금의환향’을 꿈꾸며 낯선 서울에 발을 디뎠다. 중학교 졸업을 하던 그해 여름쯤 상경했는데, 먼저 상경한 둘째 형의 영향도 있었다.
당시 서울 을지로엔 모 고속버스회사가 있었다. 그 고속버스회사의 관계자가 이런 제안을 했다. “3년 동안 우리 고속버스의 차 청소를 맡아주면, 고등학교를 무료로 다니게 해주마!”
이 대표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그 고속버스회사에서 버스 청소업무를 맡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누군가 귀띔을 해주었다. 그 고속버스회사 역사상 그런 사례는 없었다고.
이 대표는 그 고속버스회사 버스 청소부 일을 그만 두었다. 그 고속버스회사가 있는 을지로에 둘째 형의 직장이 있는 남대문시장까지 울면서 걸었다.
그해 겨울이었던가. 이 대표가 남대문시장 한 음식점에서 일을 할 때다. 발에 동상이 걸렸다.
이 대표가 상경할 때, 김제시 부량면 고향집 어머니가 검은색 운동화를 한 켤레 사주셨다. 여름철에 그 운동화를 신고 상경했는데, 새로운 신발을 살 돈이 없다보니 겨울까지 그 운동화를 신고 지냈다.
일터인 남대문시장의 그 음식점은 돼지머리가 유명한 집이었다. 그 음식점의 돼지머리를 손질하는 것이 이 대표의 주된 업무였다.
돼지머리를 다루자면 신발에 물이 많이 튀겼다. 추운 겨울, 물에 젖은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긴 시간 일을 하다 보니 발에 동상이 걸렸다.
“병원에 갔더니 발가락을 잘라야 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상경해 저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가려면 약 5백 미터쯤 걸어야 되는데, 어머니는 그 먼 거리를 저를 업고 걸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석유 곤로에 대야를 올려놓고, 백반 등을 넣고 푹 끓였습니다. 그런 다음 뜨거운 물에 제 동상 걸린 말을 담그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민간요법으로, 병원에서 발가락을 잘라야 된다고 진단을 내린 동상 걸린 제 발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 뒤, 저는 다시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숙식을 해결해 주는 제과점에 취업하게 됐는데, 제과업은 오늘날까지 저의 천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대표는 1975년 제과점에 취업한 이후 지금까지, 군 복무기간을 제외한 일생의 전부를 천직인 제과업에 바쳤다. 

 
 
 



■‘백년가게’,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카페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018년 6월부터 소상공인 성공모델 발굴을 위해 업력 30년 이상 가게(소상공인 등) 중 경영자의 혁신의지, 제품‧서비스의 차별성, 영업 지속가능성 등을 평가해 ‘백년가게’를 선정하고 있다.
지난해 8월 3일,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카페는 ‘백년가게 확인서’를 받았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확인한 이 확인서의 유효기간은 2020년 8월 3일부터 2023년 8월 2일까지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우수숙련기술자’로 선정된 바 있다. 2017년 9월, 고용노동부장관이 증서를 수여했다.
2016년, 이 대표는 농림축산식품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2년엔 중소기업청장 표창을 받았다.
지난해 7월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머니투데이 ‘2020 소비자가 뽑은 서비스고객만족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 시상식에서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카페는 고객만족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카페는 이 대표가 만드는 ‘찹쌀떡’, ‘1968옥수수빵’ 등을 선보이며, 약 40년의 역사를 유지해온 제과점이다. 이 제과점은 국내산 재료 100%를 사용해 40여 년 지켜온 장인정신으로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카페를 대표하는 제품 중 하나인 찹쌀떡은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찹쌀떡에 비해 2~3배 가량 큰 크기의 왕찹쌀떡이다. 찹쌀 반죽에 설탕을 사용하지 않으며, 달지 않은 저가당 제품이다. 100% 국내산 재료를 토대로 최상의 품질과 양질의 호도를 혼합해 고소한 맛을 살렸다.
찹쌀떡 표면에 사용되는 하얀 전분을 사용하지 않고, 포장과 동시에 생산일자를 날인해 고객의 신뢰도를 높였다.
지난해부터는 특허품인 기능성발아현미상황버섯쌀을 쪄서 미세 분쇄해 찹쌀떡 표면에 묻혀 한층 건강하게 업그레이드 시켰다. 흰찹쌀떡, 제주쑥, 복분자, 단호박, 녹차 등 5종류로 판매된다. 당일 주문 판매 원칙으로 판매수량만큼만 매일 생산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 제품인 ‘1968년옥수수빵’은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카페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과거 초등학교 시절 먹었던 추억의 맛을 재현했다. 옥수수 90%와 밀 10%의 건강한 재료 조합으로 맛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근래 한 종편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도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이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제과점에서 일하며 제과제빵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지난해 백년가게 선정은 최고의 명예이자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알고, 향후에도 건강하고 맛있는 제품들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북 찹쌀 연간 80㎏ 기준 1천석 구매
이낙근 대표가 자신의 제과점을 연 것은 1990년도다.
그 이전엔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 최초로 생크림케이크를 제품으로 선보였다. 버터케이크 시대를 끝내고 생크림케이크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정부에서는 밀가루보다 쌀을 장려했다. 이 대표는 찹쌀떡에 심혈을 기울였다. 호두, 녹차, 복분자 등을 넣어 만들었다. 그렇게 개발한 찹쌀떡이 지금까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김제시는 쌀의 본고장이다. 지평선 평야지대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어려서부터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그 어떤 작물보다도 그 생태를 잘 알고 있는 쌀은 제 인생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어릴 땐 쌀이 저를 키웠고, 어른이 된 뒤엔 쌀이 제 성공을 도왔습니다.
제가 찹쌀떡을 만드는데 주로 쓰는 찹쌀은 주로 부안 계화도 찹쌀입니다.
저희 찹쌀떡베이커리 카페의 연간 찹쌀소비량은 80㎏짜리 기준으로 약 천 가마니입니다.
앞으로도 김제나 부안의 쌀을 많이 소비하게 될 텐데, 쌀농사의 본고장인 전북에서 태어났다는 점에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전북의 찹쌀을 연평균 80㎏ 기준 1천 석씩 구매해서 찹쌀떡을 제조·판매한다는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카페, 이 카페의 번창을 바라는 마음엔 전북의 쌀 판로가 더욱 넓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깃들어 있으리라.



박찬복 기자 / 입력 : 2021년 0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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