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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을 문학산책] 잘 살다간다는 것은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06일
ⓒ e-전라매일
여러 해 전 일이다. 젊은 나이의 동생이 위암 수술 후, 정기적으로 대학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다니며 투병 생활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사돈어르신이 며느리가 병원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노란색 보따리를 들고 검사실 앞으로 찾아 오셨다.
“내가 너 먹이려고 텃밭에서 농약하나 안치고 키운 거란다. 너희 어머니는 볼일 보러 나가고 없어서 내가 이렇게 뜯어 왔다.”하시며 보따리를 풀어 하나하나 내보이는 게 아닌가.
그 분의 성품처럼 정갈하게도 상추, 시금치, 쑥갓, 아욱, 파, 부추 등이 올망졸망 담겨있었다. 거기에 햇마늘 대여섯 통까지. 보따리에 싸여있는 채소들이 어찌 그냥 먹거리이겠는가. 며느리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시아버님의 염원이며 정성이고 사랑이구나 싶었다. 가슴이 찡해오더니 화석처럼 그 모습이 내 가슴에 박히게 되었다.
그런 어른이 수학교사로 정년퇴직하고 2년이 지날 무렵, 웬일인지 평생을 다루던 숫자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치매였다. 몇 년이 흐른 후엔 병세가 악화되어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천성이 선량하신 분이라 그런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병원식구들을 대하는 언행이 시종일관 예의바르고 부드러웠다. 요양병원에서 그 분의 애칭은 ‘예쁜 할아버지’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학병원 응급실을 몇 번 왕래하며 생사의 갈림길을 헤매시더니, 봄꽃이 흐드러진 날 꽃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가셨다.
자연의 섭리는 경이롭기 그지없다. 죽은 듯 겨울을 나고 천변에 줄지어 피어난 벚꽃이며 개나리, 조팝나무 등 여러 가지 꽃들과 도란거리며 천변을 걷는다. 따듯한 봄 햇살, 부드러운 바람 같은 사랑을 주고가신 사돈어르신을 떠올려보며 어떻게 살아야 잘 살다가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크고 거창한 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그 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야만 성공한 인생일까.
비록 작고 소박한 삶이지만 단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준 감동으로 그 사람을 떠올려보면 뭉클해져서 한참씩 가슴이 찡해오다 따뜻해지는 사람. 그런 사랑이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퍼져나가서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밝고 훈훈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 살다간 보람이 있지 않을까. 특히 아름다운 모습이 누군가의 가슴에 화석처럼 새겨져 있다면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사돈어르신이 매만지던 노란 보따리가 떠올라 마음이 포근해지는 봄날이다.

/이영주 수필가
전주문협 회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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