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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시인의 눈> 주름살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24일
ⓒ e-전라매일
껍질은 생명체의 안쪽을 싸고 있는 보호막이다. 껍질이 있기 때문에 식물이건 동물이건 기관이나 조직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받는다. 그렇게 보호받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하고 지탱할 수 있는 것이다. 껍질이 없으면 생명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껍질 가운데는 약리작용을 하는 껍질도 있다. 소나무의 껍질에는 항산화제 성분이 있어 노화를 억제하고 살균작용을 한다니 함부로 버릴 일이 아니다.
껍질이 어린 때는 아주 연하고 생기가 돌아 그 모습도 색깔도 참 곱고 예쁘다. 그러나 성장됨에 따라 점점 빛깔이 어둡게 변하며 형태마저 바뀐다.
늙은 소나무의 껍질을 본다. 쩍쩍 갈라지고 너덜너덜 떨어져 겉보기에도 지저분해 보인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니 소나무껍질이 그렇게 변화되면서 소나무를 우람하게 키울 수 있었지 않은가. 소나무뿐이랴. 나무들마다 그 곱고 여리던 껍질들이 자라면서 때를 따라 꽃이 피고 울창한 나뭇잎들을 푸르게 흔들며 당당한 한 그루 나무로 자라있지 않은가. 껍질이 갈라지고 뒤틀리고 딱딱해지는 동안 나무들이 자라 아름다운 숲을 이루지 않았는가.
껍질을 들여다보면 갈라진 틈새에서 지나간 긴 세월의 풍상을 보인다. 껍질 속에서 봄 숲의 꽃향기와 무더운 여름의 이글거리던 햇빛의 흔적을 찾는다. 그뿐이랴. 산을 찾은 아이들의 무심한 발길질에 우두둑 가지가 부러져 나가던 날의 아픔과 깊은 밤의 달빛과 별빛을 껍질에서 함께 읽는다. 껍질이 그렇게 변화되며 식물의 몸에 아직 붙어있기 때문에 식물이 살아 있는 것이다.
동물의 몸 거죽을 싸고 있는 껍질을 피부라 한다. 인간의 피부 또한 어릴 때는 보송보송 얼마나 보드랍고 귀엽던가. 그 피부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탄력을 잃고 보기 흉하게 주름져 간다. 그 주름살 한 줄 한 줄 속에 지나온 세월의 온갖 오욕칠정(五慾七情)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새겨져 있음을 본다.
갈라진 껍질이 한 그루 나무를 여기까지 있게 한 인도자이듯 주름살은 한 사람을 여기까지 안내한 동반자가 아닌가. 주름살은 피부의 노화(老化)로 변형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 겸손과 감사로 성숙된 사랑이다. 깊이 팬 주름살은 나이 들수록 쌓이는 지혜와 경륜의 보고가 아니겠는가.
허물 많고 부끄러운 이 생명을 주름살이 생길 때까지 세상에 남겨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린다.

/김환생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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