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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시인의 눈> 시인과 호반새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17일
ⓒ e-전라매일
지난 초여름 붉은 경악을 보았다. 눈 감고도 다니던 호젓한 냇가를 지나다 만난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밤나무 가지 위에 온몸을 불사른 노을빛 새 한 마리, 고독한 불새였다. 코로나 19는 비탄적 경악이지만 호반새는 희열적 경악이었다. 무료함 속에서 낯설기의 현장을 목도했다. 그 낯설기는 이내 비장미와 숭고미 우아미를 가르쳐주었다.
호반새는 여름 철새로 한반도에 몇 마리 날아들지 않는 진객이다. 그래서 국립공원 계룡산의 깃대종으로 극진한 기다림의 대접을 받는 까닭이다. 천운과 시운이 있어야 본다는 그 남방 철새는 황홀했다. 동남아 공연을 마치고 온 농담 같은 진담. 눈 깜박할 새 그는 작시(作詩)의 가르침과 의문의 불씨를 남기고 사라졌다.
시를 배우는 나는 ‘충격의 낯설기’를 생생히 체험했다. 넋을 빼놓고 환호작약의 트라우마를 이마에 새겼다. 어둠 속 한 줄기 섬광의 번개를 맞았다. 찰나의 매혹과 절대고독, 공허로 인한 멜랑콜리가 전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깃대종을 음미했다. 어느 지역의 생태나 지리적 특성을 대표하는 동식물을 의미한다. 즉 해당 지역 생태회복의 선구자적 이미지를 부여한 상징적 표현이다. 시인도 깃대종에 가입할 자격이 있을까? 어느 깃발의 장대를 들고 어느 곳에서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호반새가 아름다운 건 수천수만 고행의 바다를 건너와 최후의 맑은 계곡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생태 지킴이를 자처하며 난잡한 인간의 세계를 울리는 까닭이다. 이렇듯 시인들도 시공간을 초월하며 달려간다. 이 골 저 골 지키는 호반새처럼 각자의 계곡을 지키는 시인들을 생각한다. 맑은 영혼의 시인들이 차고 넘치는 우렁우렁한 다양한 계곡을 나는 갈망한다.
세상의 나태를 씻기고 신비의 옷을 입히고 천상의 목소리를 쏘아대던 호반새. 지금쯤 그녀는 어느 청풍 숲속에서 달 같은 알을 품고 있을까? 시를 짓는 것은 여린 생명을 보듬는 일, 골고루 온기를 주고 이내 줄탁동시로 함께 깨어나, 몽상의 현재가 젖은 미래에 두 날개를 사뿐히 넘겨주는 고백임을 생각한다.
노을빛 호반새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고양된 나의 의식은 낙화 동백의 열병처럼 한동안 몸져누웠다. 태양과 달빛에 그을려 백날을 날아온 불새, 그 희열 찬 낯선 고독의 몸짓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죽은 내 심장에 심폐소생을 일으킨 그 호반새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긴 장마에 젖은 내 무딘 몽당연필만 지그시 바라볼 뿐이다.

/왕태삼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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