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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을문학산책]업어주고, 업히며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17일
여동생이 회갑을 맞이하니 만감이 서린다. 동생이 태어난 지 스무 날 만에, 어머니가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여덟 살이던 내가 동생을 업고 어머니 발치에 서 있으면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야야, 학교를 못가서 어쩔거나”
“학교가 문제여? 어머니가 빨리 나아야지”
고난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한다. 석 달 내내 동생은 나와 한 몸이 되어 축축한 내 등에 업혀서 울다 자다하며 자라고, 나도 몸집이 커졌는지 입던 옷이 작아졌다.
어느 날, 동생을 업고 마을 어귀에 서 있었다. 저 멀리서 외할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넘어질 듯 달려오셨다. 전염병이라 와보지 못하다가 기별을 받고 오시던 참이었다.
“야야, 등에 있는 게 애기냐? 베개냐? 혹시 네 동생이냐?”
“예, 동생이에요.”
“애기가 안 죽고 살아있었단 말이냐. 진즉 죽었을 줄 알았더니 살아있었어?”
외할머니는 내 등에 업힌 애기를 들여다보며 만져보랴, 동생을 업고 있는 나를 쓰다듬으랴, 범벅이 된 눈물을 닦아내랴,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는 듯 했다. 생명은 기적이며 축복이고, 슬플 때는 물론 기뻐도 눈물이 흐른다는 것도 알 게 되었다.
다 지나간다더니 어머니는 비척거리는 걸음이지만 발을 뗄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었다. 학교에 가자고 하셨다. 그토록 가고 싶은 학교였는데 쑥스러워 울음이 먼저 터져 나오고 말았다. 어머니가 손을 잡고 데려다주어 석 달의 장기결석을 마무리 했다.
새로운 학교생활은 주눅이 들어 조마조마하고 낯설기만 했다. 운동회가 코앞인데 나만 처음 하는 율동. 그 날의 당황스러움과 막막함, 좌절감과 소외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다. 며칠 동안이지만 나홀로 연습으로 운동회 날은 친구들 못지않게 잘 해냈다. 난생처음 맛본 성취감이었다.
동생과 나는 하마터면 생사가 갈렸을 역경을 극복했고, 청춘시절을 함께 고민하며 건너왔다. 고난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살아오는 동안 수시로 닥쳐오는 어려움도 힘을 모아 이겨냈다. 어려서는 내가 동생을 돌보아주었지만 인생의 여행길에서는 오히려 동생이 나를 업어주며 언니노릇을 해줄 때가 더 많다.
아무리 수명이 길어졌다지만, 어느덧 우리 자매도 인생의 황혼기를 향하고 있다. 이제는 황혼의 뜰을 잘 가꾸어야 한다. 앞으로는 지나온 세월보다 더 자주 업어주며, 업히며 힘을 모아야 할 게다. 자매가 서로 도와가며 순리에 따라 사노라면,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뜰이 되리라 믿어본다.

ⓒ e-전라매일


이영주 수필가
전북·전주문협 회원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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