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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시인의눈] 개와 늑대의 시간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16일
ⓒ e-전라매일
순천만 물길이 광활한 갈대밭에서 갈지자걸음을 하고 있는 시간, 또 하루를 건너온 태양이 퉁퉁 부은 발을 잠시 물길에 담그면, 물빛은 선홍빛으로 뜨거워진다. 낙조 사진의 명소로 알려진 순천만 용산에 황혼의 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저마다 카메라에 삼각대를 받혀놓고 자리싸움이 한창이다. 사실 낙조가 물길과 겹치는 겨울철이 사진의 적기이지만, 요즘에는 연중 사람들이 모여든다.
해는 약간의 사선을 그으며 서산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잠시 탄성과 셔터 누르는 소리로 들뜨다가 태양이 자취를 감춰버리면 다들 카메라를 챙겨 서둘러 떠나버린다. 그러나 노련한 사진가는 홀로 남아서 비로소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바로 개와 늑대의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 질 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어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으로 프랑스어 heure entre chien et loup에서 따온 말이다.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시간의 경계,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는 시간을 가리킨다.
이 시간이면 고요가 어둠처럼 다가서고 먼 산 아래 외로운 등불들이 하나둘 불을 밝혀 이웃을 찾는다. 그때 놀랍게도 하늘의 푸른 기운이 더욱 맑아져서, 다가서는 어둠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된다. 벚꽃을 찍을 때도 이 시간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정말 멋진 야경 꽃 사진을 얻을 수가 있다.
여행의 묘미는 내가 있는 공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닐까. 자연의 찰나에 붙이는 이름에 어여쁜 우리말도 있으니 바로 ‘이내’이다.
해는 없지만, 하늘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남아 있는 시간, 길어야 20분이 안 넘는 낮과 밤이 교대하는 시간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한자어로는 ‘남기(嵐氣)’라 한다. 산에 서리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라는 기막힌 표현이다.
나는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 앞에 서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가장 비참했던 시절에도 희망이 있었기에 제목을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붙였던 섬진강 구담마을에서 찍었던 옛 영화가 생각난다. 숱한 논리와 논리의 싸움 속에 어떤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쉽게 분간이 가지 않지만, 힘들어하지 말고 그 속에서 푸른빛의 희망을 찾아보는 삶의 고수가 되어봐야겠다.

/김영기 시인
전북시인협회 회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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