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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을 문학산책] 그녀, 지금은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28일
ⓒ e-전라매일
삼십 분 동안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좁은 공간에서 듣는 이가 되어 같은 세상을 다르게 사는 모습을 읽었다. 이른 아침 시장풍경부터 그녀가 사는 얘기, 자녀들 사는 모습까지 상세히 보여주듯 얘기하는 그녀는 초면이다. 그녀의 품에서 꺼낸 휴대폰 안에는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풍성했다.
먼저 지정된 좌석에 앉았는데 그녀가 양손에 짐 꾸러미를 들고 들어왔다. 선반에 올리지 않고 발아래에 짐을 놓겠다며 좁은 의자 사이에 끼워 넣는다. 짐 하나는 의자 아래에 하나는 무릎에 놓고 앉았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걸까 의심을 하면서 그쪽을 향해 불편한 눈총을 쐈다.
그녀는 전날저녁에 갑자기 딸의 부름을 받고 제주도에 가는 길이란다. 아니 이럴 수가! 우리는 비행기티켓을 2개월 전부터 예약하고 기다렸는데…. 그게 가능하냐니까 휴대폰을 열고 딸이 보내준 비행기티켓을 보여준다. 늦게 예약한 좌석이 앞쪽인데다 창가로 잘 골랐다. 인터넷 세상을 맘껏 누리는 딸의 힘이리라. 전날 내게도 비행기 탑승 수속을 모바일로 하라는 문자가 왔다. 나름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동승자를 포함하는 절차가 서툴러 안타깝게도 포기했었다. 결국 공항 시스템에서 그 절차를 진행했더니 남은 좌석이 적어 우리 일행은 띄엄띄엄 앉았다. 돌아오는 티켓은 꼭 모바일로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신혼생활 중인 삼십 대 아들딸을 둔 엄마이다. 자녀들의 결혼으로 걱정이 많은 부모들과는 사뭇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같다. 자녀에 대한 자랑거리가 늘어진다.
특히 자주 타고 있는 비행기가 딸 덕분이니 딸 가진 엄마의 행복감을 맘껏 뽐낸다. 대기업을 다녔던 딸은 결혼하고 제주도 공기업으로 직장을 옮겨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단다. 육아휴직 중인 딸이 수시로 친정엄마를 불러서 자주 제주도를 오가며 산다는 것이다. 전날 딸의 전화를 받고 새벽시장에 가서 세발낙지를 샀단다. 해산물의 천국인 제주도에서 구할 수 없는 먹거리라며 육지와 섬을 오가며 사는 고수의 티를 낸다. 오늘은 사위를 위해 장모님이 차려줄 특별한 저녁상에 대한 계획도 풍성하다. 더불어 줄을 서서 예약해야 맛본다는 제주신라호텔의 명물 망고빙수를 사진으로 보여주며 입에 침이 고이게 자랑이다.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내 배가 슬슬 아파온다. 나도 혼기가 꽉 찬 아들딸이 있으니 듣는 내내 부러움을 감추려 애썼다. 자녀들의 결혼, 직장, 살림 집 같은 걱정거리 따윈 아랑곳없는 듯 특권을 누리는 것 같아 얄밉게 보이기도 한다. 딸이 신축아파트 분양에 당첨되었다며 축배를 들게 오시라고 했단다. 내 집 마련까지 일사천리로 순탄대로를 달리고 있다니 요즘 같은 세상을 사는 특별한 비법을 지녔나 묻고 싶었다.
며칠 전 친구와 나눈 대화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친구의 아들도 내로라는 고급공무원이다. 좋은 직장을 가진 며느리와 맞벌이를 하면서 살고 있다. 자녀도 한 명인 신혼가정인데 수도권에서 분양신청을 해도 매번 탈락한다며 걱정이 많았다. 아이를 둔 신혼가정이면 분양권 우선순위가 주어진다고 알고 있는데 부부합산 소득 때문에 순위가 밀려 답답할 뿐이란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6억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는 말에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친구는 도움을 줄 형편이 안 되니 전세계약기간이 다가오면 물어보지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준비하는 우리 아들도 광역시에서 집을 구하는데 예상 밖의 전세 값에 놀라며 진땀을 빼고 있으니 그녀의 얘기가 별천지 얘기처럼 들린다. 내 주변은 힘들다는 아우성인데 지금 말하는 그녀 사는 얘기는 마치 딴 세상 같다.
생면부지의 그녀는 삼십 분 비행시간을 풍성하게 꾸며줬다. 딸의 부름에 쏜살 같이 달려가서 육아도 돕고 살림도 돕는 그녀도 요즘 세상을 현명하게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아줌마였다. 그 속에서 얻은 행복을 내게 잔뜩 뿌려준 것이다. 그 씨앗이 내게도 잘 발아되길 기대한다.
비행기 트랙을 빠져 나온 그녀는 인파 속으로 묻혀버렸다, 두 손 가득한 짐을 풀며 웃음 지을 그녀를 상상해본다.
/황점숙
전주문인협회 회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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