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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시인의 눈] 상처는 언어의 집이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29일
ⓒ e-전라매일
모니터가 창문처럼 켜져 있다. 나에게로 와준 이 따뜻한 전깃줄이 고맙다. 깜박깜박 커서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이 창문에 기대어 입김만 흐리고 간 시인을 기억하는 밤. 그 사람은 당신일 수도 나일 수도 있다.
‘상처에서 꽃이 핀다’ 라는 문장을 적는다. 너무도 상투적인 이 문장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는 신호탄이라면 말이 될까. 절망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벼랑으로 떨어졌을 때 순간의 낙담과 순간의 좌절과 순간의 치욕을. 사는 게 지뢰밭이라면 누가 인생을 아름답다 말하겠는가. 터진 상처에서 어떤 이는 분노하고 어떤 이는 울분을 토해내기도. 또 의연히 자기를 되돌아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상처는 인간이 주는 것이므로 상처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너지고 파괴된 자아를 끌고 또 덤덤히 살아가야 하므로. 이때 사유가 생긴다. 상처로 인해 말이 줄고 행동이 작아지고 생각이 늘고 혼자 노는 시간이 길어진다.
내 경우엔 시를 쓴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 들키면 안 되는 것. 말해도 되나 싶은 것.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것을 쓴다. 이름 없고 하찮은 무명인 나를 쓴다. 아니 기록한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니? 차라리 화살을 내 심장으로 겨눠보면 조금은 알 것 같다. 너덜너덜해져 미처 닿지 못한 말들이 핏덩이가 되어 뭉쳐있는 것을. 난 핏덩이로 모자도 만들고 인형도 만들고 시간을 만들어 시로 옮긴다. 그래, 난 옮기는 사람이다. 구름도 옮기고 꽃그늘도 옮기고 비도 옮긴다. 때로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미세먼지도 옮긴다. 오늘같이 무얼 옮겨야 하는지 모르는 날에도 나는 옮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모른다. 슬픈 걸 옮길 때 마음이 왜 한없이 맑아지는가를. 아픈 걸 옮길 때 왜 지독히 심장이 무거워지는가를. 나는 모른다. 얼마나 울어야 하늘에 가까워지고 땅에서 멀어지는지. 어쩌다 평생을 꽃들과 울게 됐을까.
나는 모르고 또 모르며 환한 절망을 안고 기꺼이 피어오른다. 상처에서 시인은 여러 번 피어난다. 여전히 실패하는 자이므로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시는 나와 당신에게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을 견디게 하는 힘이고 삶을 사랑하고 살아있다는 걸 현현히 증명하는 순례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시는 내가 혼자 쓰는 행위이지만 그 배후엔 모든 존재들이 함께 한다.
아직도 모니터가 창문처럼 켜져 있다. 이 전깃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먼 바닷가 등대에까지 가 닿는다. 오로지 바다만 바라보는 망망대해. 그리움의 끝이 어디인지 헤아릴 길 없으나, 그 등대의 고독한 눈동자가 시인의 눈이 아닐까 한다. 그 눈빛에서 36.5도의 온기를 느낀다. 시인의 말이 그렇게 머나먼 곳에서 온 말이기를. 시인의 입김이 그렇게 머나먼 어두운 곳을 거쳐 이렇게 단 한 번 켜지는 것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문희 시인
전북시인협회 편집위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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