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7-15 06:05:0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뉴스 > 요일별 특집

[문학칼럼-시인의 눈] 상처는 언어의 집이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29일
ⓒ e-전라매일
모니터가 창문처럼 켜져 있다. 나에게로 와준 이 따뜻한 전깃줄이 고맙다. 깜박깜박 커서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이 창문에 기대어 입김만 흐리고 간 시인을 기억하는 밤. 그 사람은 당신일 수도 나일 수도 있다.
‘상처에서 꽃이 핀다’ 라는 문장을 적는다. 너무도 상투적인 이 문장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는 신호탄이라면 말이 될까. 절망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벼랑으로 떨어졌을 때 순간의 낙담과 순간의 좌절과 순간의 치욕을. 사는 게 지뢰밭이라면 누가 인생을 아름답다 말하겠는가. 터진 상처에서 어떤 이는 분노하고 어떤 이는 울분을 토해내기도. 또 의연히 자기를 되돌아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상처는 인간이 주는 것이므로 상처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너지고 파괴된 자아를 끌고 또 덤덤히 살아가야 하므로. 이때 사유가 생긴다. 상처로 인해 말이 줄고 행동이 작아지고 생각이 늘고 혼자 노는 시간이 길어진다.
내 경우엔 시를 쓴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 들키면 안 되는 것. 말해도 되나 싶은 것.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것을 쓴다. 이름 없고 하찮은 무명인 나를 쓴다. 아니 기록한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니? 차라리 화살을 내 심장으로 겨눠보면 조금은 알 것 같다. 너덜너덜해져 미처 닿지 못한 말들이 핏덩이가 되어 뭉쳐있는 것을. 난 핏덩이로 모자도 만들고 인형도 만들고 시간을 만들어 시로 옮긴다. 그래, 난 옮기는 사람이다. 구름도 옮기고 꽃그늘도 옮기고 비도 옮긴다. 때로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미세먼지도 옮긴다. 오늘같이 무얼 옮겨야 하는지 모르는 날에도 나는 옮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모른다. 슬픈 걸 옮길 때 마음이 왜 한없이 맑아지는가를. 아픈 걸 옮길 때 왜 지독히 심장이 무거워지는가를. 나는 모른다. 얼마나 울어야 하늘에 가까워지고 땅에서 멀어지는지. 어쩌다 평생을 꽃들과 울게 됐을까.
나는 모르고 또 모르며 환한 절망을 안고 기꺼이 피어오른다. 상처에서 시인은 여러 번 피어난다. 여전히 실패하는 자이므로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시는 나와 당신에게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을 견디게 하는 힘이고 삶을 사랑하고 살아있다는 걸 현현히 증명하는 순례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시는 내가 혼자 쓰는 행위이지만 그 배후엔 모든 존재들이 함께 한다.
아직도 모니터가 창문처럼 켜져 있다. 이 전깃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먼 바닷가 등대에까지 가 닿는다. 오로지 바다만 바라보는 망망대해. 그리움의 끝이 어디인지 헤아릴 길 없으나, 그 등대의 고독한 눈동자가 시인의 눈이 아닐까 한다. 그 눈빛에서 36.5도의 온기를 느낀다. 시인의 말이 그렇게 머나먼 곳에서 온 말이기를. 시인의 입김이 그렇게 머나먼 어두운 곳을 거쳐 이렇게 단 한 번 켜지는 것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문희 시인
전북시인협회 편집위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29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시민과 함께 일군 빛나는 3년, 정읍의 담대한 변화 이끌다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군-정치권 노력끝에 노을대교 2030년 개통 청신  
지해춘 군산시의원의 생활밀착 의정 “발로 뛰어야 도시가 보인다”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심덕섭호 3년, 변화와 성장으로 미래 열었다  
<2025년 민선 8기 고창군정 성과> 심덕섭호 3년, 변화와 성장으로 미래 열었다  
“전주의 결의, 만주의 승전” 봉오동 전투 105주년 전북서 되살아난 항일의 불꽃  
전주의 결의, 만주의 승전” 봉오동 전투 105주년 전북서 되살아난 항일의 불꽃  
전북 대표 국립전주박물관, 새로운 35년을 열다  
포토뉴스
국립무형유산원, 고(故) 강선영 명인 삶과 예술을 무대에 올린다
전통예술의 본산인 국립무형유산원이 우리 춤의 거장, 고(故) 강선영 명인을 예술로 추모한다. 국립무형유산원(원장 박판용)은 오는 7월 25일과 
한국예술문화명인전 `2025名人 同樂展` 전북 예술회관에서 성료
한국예술문화명인 전북특별자치도지회(회장 김상휘)가 주관하고 (사)한국예총과 (사)한국예술문화명인진흥회의 후원으로 열린 한국예술문화명인 초대전  
익산시티투어 전면 개편…관광도시 도약 `본격 시동`
익산시가 시티투어를 전면 개편하고 관광도시 도약을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섰다. 시는 관광 콘텐츠 재구성, 예약 시스템 개선, 지역 상생모델 강화 
전주천년한지관, 두 번째 기획전
전주문화재단(대표 최락기)이 전주천년한지관에서 두 번째 특별기획전 ‘그럼에도 꽃이었다’를 선보이며, 전통 공예 지화(紙花)를 통해 인간의 삶과 
전주 인사동카페 물들인 기타 선율
전주 인사동카페의 여름밤이 기타 선율로 물들었다.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편집·발행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