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8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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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에서 고산 쪽으로 나가면 무궁화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게 된다. 무궁화나무마다 탐스러운 꽃이 피어서 보기 좋았다. 대아저수지 길을 돌아 나와서 송광사 옆의 연밭에 닿았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모임을 못하게 되어도 연밭 주위에는 자동차들이 즐비했다. 한둘이나 서넛이 연밭을 돌아 나가고 있었다. 한낮에 땀에 젖어서 걷다가도 연꽃을 보면 의연해진다. 서지상하(西池賞荷), 부채와 죽부인 정도밖에 없었던 옛날의 피서법 중의 하나가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였다니! 몇 년 전에 연못 주위에 있었던 몇 그루의 무궁화나무는 지금은 없어지고 주차장이 되었다. 연밭의 가운데로 난 길가에 한 그루의 무궁화나무 꽃들이 찬란하게 푸른 하늘 밑에 빛나고 있었다. 연밭의 주인공은 연꽃이어서 아무도 무궁화꽃은 눈여겨보지 않았다. 연못가에서 나는 무궁화꽃을 올려다보며 사진에 담기도 했다. 화가 고(故) 김점선과 내가 체험했던 무궁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 무궁화꽃이 촌스럽고 벌레가 많이 끼어서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은 뒤부터 무궁화나무를 생각했다. 왜 하필이면 조상이 이 꽃을 자손들에게 기억시키려고 했을까. 어른이 된 점선은 무궁화나무가 다섯 그루나 있는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다. 여름이 시작되자 무궁화나무의 잎사귀를 갉아 먹고 있는 벌레 한 마리를 보았다. 차츰 벌레가 많아지고 잎사귀는 구멍만 난 게 아니라 잎줄기만 남기고 통째로 없어졌다. 나무에도 생명력이 있다. 나무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 사람이 나무 편을 들어서 벌레를 죽여주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벌레는 오로지 무궁화 잎만 먹었다. 다른 나무에는 벌레는 없었다.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는 나무는 죽어 마땅하고 사람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우주의 질서라고 생각했다.” 무궁화나무는 완전히 벗은 상태가 되어 하늘 속에 모든 가지를 뚜렷이 드러내게 되었다. 어느 날 나뭇가지 끝의 연두색이 짙어진다 싶더니 싹이 텄다. 잎들이 죽어가던 속도보다 더 빨리 피어났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 말도 않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무궁화나무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해 여름에는 한 열흘쯤 꽃이 더디게 핀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단다. 그야말로 은근과 끈기의 무궁화 정신을 물려받은 그녀였다. 무궁화 꽃은 본래의 아름다움이 무엇엔가 가려져서 조금만 보이는 듯한 그런 꽃이다. 그 가려진 것을 치우고 싶게 만드는 꽃이다. 언젠가 더욱 아름다워질 것만 같은 그런 꽃이다. 무궁화 꽃에는 절제 속에 가득한 힘, 숨겨진 힘, 절제와 질서와 힘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듯한 이상한 아름다움이 스며있다. 그해 여름, 그런 아름다움이 빗물에 젖은 커다란 무궁화나무 전체에 펴져 있었다. 무궁화꽃은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오래오래 핀다. 여름 내내 무궁화는 새로운 꽃이 빛을 향해 열리고, 저녁이면 소리 없이 접힌다. 무궁화나무 밑을 보면 돌돌 말린 채 떨어진 꽃송이들이 수북하다. 어제의 꽃들이 떨어진 위에 오늘의 꽃이 밤중에 또 소리 없이 쌓일 것이다. 그래서 무궁화꽃은 종이에 그릴 수는 있지만, 꺾꽂이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무궁하게 피고 지고 오랫동안 언제나 싱싱하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근면성과 순결, 끈기와 유구성이 무궁화의 생태적인 특성을 닮아 은연중에 나라꽃이 되었을까. 고대로부터 우리나라에 많이 자생했다는 무궁화꽃이 우리 민족을 닮아서일까. 이름처럼 무궁히 뻗어 나갈 민족이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아닌가. 이 엄중한 바이러스 시대의 폭염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무궁화나무의 정신으로 살아야 할 일이다.
/조윤수 전주문협회원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8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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